[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21)

  • 입력 2002년 9월 12일 16시 14분


⑤ 망명

밤이 되자 유계는 거나한 중에도 숨어 지낼 곳으로 옮기려 했다. 어둠 속에서 움직여야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고, 뒤쫓는 관리나 병사들을 따돌리기도 쉽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길이 낯설고 험해 모두가 떠나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했다. 오래잖아 앞서 떠난 이가 여럿과 함께 되돌아와 말했다.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함께 되돌아온 사람들은 낮에 일찍 길을 떠난 일꾼들이었다. 큰 뱀에게 길이 막혀 웅성거리고 있다가 유계가 보낸 사람을 만나자 함께 돌아오게 된 듯했다. 술에 취해 호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던 유계가 칼을 짚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장사(壯士)가 가는 길에 두려울 게 무엇이냐? 모두 나를 따르라!”

그리고는 앞장을 섰다. 함께 있던 일꾼들이 또한 술기운을 빌려 유계를 따랐다. 그러자 쫓겨온 사람들까지도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돌아섰다. 다만 몇 사람만이 변화를 살펴 움직일 양으로 그곳에 남았다.

“바로 저깁니다. 저기 허옇게 엎드려 있는 게 그 뱀입니다”

한참이나 밤길을 더듬어 나아가는데 먼저 와본 적이 있는 일꾼이 한곳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앞장은 서도 갈수록 치솟는 취기 때문에 비척거리며 걷던 유계는 그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보았다. 어둠 속에 무언가 허연 나무둥치 같은 게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게 보였다.

  <이문열 신작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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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은 그 뱀을 보자 겁에 질려 굳은 듯 멈추어 섰다. 그들 중 몇은 되돌아서 달아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는 뱀과 싸우는 데 쓸 만한 병장기가 거의 없었다.

그 바람에 홀로 앞서게 된 유계는 얼른 칼을 빼들고 그 뱀을 노려보았다. 뱀도 마주 노려보아 불길하면서도 쏘는 듯한 두 줄기 빛이 유계의 눈시울을 찔러왔다. 유계는 술이 확 깨는 느낌과 함께 가슴이 떨리고 오금이 저려왔다. 그대로 되돌아서서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은 각기 하늘로부터 받은 바 명(命)이 있고, 때가 되면 그 명은 일상(日常)의 두꺼운 껍질을 찢고 그만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조짐일 뿐이었던 유계의 천명이 처음으로 그 유별난 빛을 뿜어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득 빠르고 세찬 빗줄기처럼 유계의 가슴 속을 스쳐간 깨달음이 있었다.

(이게 바로 그 ‘때’인 것 같다. 비록 머릿수는 많지 않으나 이 사람들은 나를 믿어 목숨까지 걸고 나를 따랐다. 나는 이제 저 뱀을 베어 그 믿음에 보답하고, 아울러 저들을 이끌고 다스릴 존재로서의 나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상(非常)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유계는 자신을 내던지듯 칼과 몸이 한 덩이가 되어 뱀을 덮쳤다. 그 기세에 눌린 것일까, 뱀은 몸 한 번 움찔해보지 못하고 유계의 칼에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베었다! 정장나리께서 큰 배암을 죽이셨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둠 속이지만 가까운 데서 보아 유계가 뱀을 죽인 것을 알게 된 일꾼들이 놀라 소리쳤다. 뒤돌아서 달아나려던 일꾼들이 되돌아와 감탄의 소리를 보탰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유계는 갑작스레 다시 치솟는 취기 때문에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첫발을 내딛는 것인가. 이렇게 시작하는가….)

칼을 짚어 새삼 흔들리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그저 몽롱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길이 열리자 일꾼들은 비척거리는 유계를 부축해 앞으로 나아갔다. 날이 밝기 전에 뒤쫓는 사람들이 닿지 못할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계가 워낙 취해 멀리 갈 수가 없었다. 겨우 몇 리를 가다가 끝내 곯아떨어진 유계를 나무 그늘에 뉘고 자신들도 부근에서 쉬었다.

새벽이 되자 형세를 살펴 움직이려고 처져 있던 사람들이 유계 일행을 뒤따라잡았다. 그때 유계는 이미 술에서 깨어나 있었다. 뒤따라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놀랍고도 괴이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뒤따라 오던 저희들은 정장나리께서 뱀을 베신 곳에서 실로 야릇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봐도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 일입니다 ”

“무슨 일이 그러한가?”

유계가 그렇게 묻자 그 중에 하나가 나서서 입심 좋게 일러주었다.

“저희들이 그곳에 이른 것은 한밤중이었습니다. 토막 난 큰 뱀의 시체 곁에서 한 할멈이 슬피 울고 있더군요. 허연 옷에 흰 머리칼을 흩날리며 울고 있는 할멈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할멈은 울먹이며 대답하기를, 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을 무참하게 죽인 까닭에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중의 하나가 다시 물었습니다. 할멈의 아들이 누구에게, 왜 죽임을 당했냐고요. 할멈이 더욱 구슬피 울며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은 곧 백제(白帝)의 아들이기도 하지. 금덕(金德)이 쇠하고 화덕(火德)이 성해, 그 화덕 가운데서도 새롭고 세찬 기운 한 갈래가 이곳을 지난다기에 내 아들은 큰 뱀으로 변해 그 길을 막고 있었어. 그런데 이곳을 지나간 게 바로 적제(赤帝)의 아들이었다고 하는구나. 그 적제의 아들이 한칼에 내 아들을 두 토막 내고 지나가 버렸으니, 이제 백제와 금덕의 시대는 끝나버린 셈이 아니냐? 그래서 이렇게 슬퍼하고 있는 거야.’

저희들은 그 할멈이 공연히 허황된 소리를 해 사람을 홀리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로라도 혼내주려 하는데, 이런 신기한 일도 있습니까? 할멈은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실로 그 할멈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저희 모두가 일시에 헛것을 본 것인지 저희로서는 얼른 가늠이 서지 않습니다.”

백제(白帝)는 고대 전설에 뱀신[사신]을 가리키며 금덕을 지닌 것으로 되어 있다. 진(秦)나라 문공(文公)이 꿈에 뱀을 보고 백제를 제사 지낸 이래로 진나라는 백제를 섬기는 것으로 되었다. 이에 대해 유계는 일찍부터 교룡(蛟龍)의 자식이며 적제(赤帝)의 아들임을 자칭해 왔다. 그렇다면 할멈의 말은 유계가 진나라를 망하게 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 말을 들은 유계는 눈 한번 깜박 않고 말했다.

“그 할멈의 말은 어김없이 참말이다. 내가 교룡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적제의 아들이란 것은 풍읍(豊邑)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도 안다!”

그런데 사서(史書)에까지 버젓이 오른 이 신비한 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풀이가 있다. 유계에게 어떤 초월적인 소명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가 연출한 것이란 점에서는 같지만, 그걸 실연(實演)한 게 할멈인지 뒤따라온 일꾼들인지는 의견이 갈린다.

그 할멈이 실제 나타나 그같이 말했을 것이라고 우기는 쪽은 그 배후로 유계의 하급자인 정보(亭父)나 패현에서부터 유계를 흠모해 따라간 건달들을 의심한다. 곧 그들이 아직 유계를 믿지 못하고 있는 패거리를 한편으로 끌어들이고자 인근의 할멈을 사들여 연출한 것으로 본다. 그때 그들은 유계의 신화를 증명하는 풍읍사람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을 것이다.

천명설(天命說)의 한 변형인 그 설화의 다른 풀이로는, 그게 뒤따라온 일꾼들의 자발적인 연출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슬피 우는 할멈 같은 것은 원래 없었고, 다만 유계를 믿지 못해 망설이다 뒤늦게 합류하게 된 이들의 낯없음과 어색함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며칠 함께 오면서 풍읍 사람에게서 들은 유계의 출생에 얽힌 풍설과 죽어 자빠진 뱀을 그럴싸한 신화로 엮어 유계에게 예물 삼아 바친 것이라고 본다.

진상이야 어떠하건 그 연출은 아주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한서(漢書)’는 그 효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고조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고조는 마음으로 은근히 기뻐하며 자랑스레 여겼다[高祖乃心獨喜, 自負]. 고조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도 (그 일로) 날이 갈수록 더욱 (고조를) 우러르게 되었다[諸從者 日益畏之]….’

그리하여 수십명으로 불어난 유계의 무리는 먼저 가까운 늪지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늪지는 달아나고 숨기에는 좋아도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하기에는 마땅치 못했다. 소택(沼澤)에 물고기가 흔하다 하나 그것만 먹고는 살 수 없고,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다 못해 다급할 때 지나가는 길손을 털기에도 늪지는 불리했다.

이에 유계는 대강 자리잡기 바쁘게 패현으로 사람을 보내 소하에게 가만히 그곳의 사정을 알렸다. 소하는 낯 한번 찡그리는 법 없이 적지 않은 곡식과 돈을 모아 유계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 뒤 한(漢)의 천하가 온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혼자 도맡게 될 병참(兵站)과 보급의 시작이었다.

또 유계에게 필요한 사람을 대주는 일도 소하는 그때 이미 시작했다. 평소 유계를 따르던 패현 저잣거리의 건달들에게 가만히 그가 있는 곳을 알리니, 그들이 다투어 유계를 찾아가 무리는 100명에 가깝게 불어났다. 그들이 유계를 중심으로 굳게 뭉치자 곧 인근 작은 고을의 이졸(吏卒)이나 구도(求盜)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세력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렵게 자리잡은 그 늪지도 유계가 오래 근거 삼을 땅은 못되었다. 어느 날 노관이 드디어 가솔과 생업을 버리고 유계를 찾아와 말했다.

“소하의 말이 근거지를 풍읍에서 보다 멀고 사람의 발길이 미치기 어려운 곳으로 옮기라 하네. 시황제의 순수가 이 봄에는 회계(會稽)에 미쳤는데, 이는 동남쪽에 천자의 기(氣)가 있다는 말을 믿어서라더군. 곧 대군을 풀어 동남쪽에 뭉친 불온한 기운을 쓸어버릴 것이라 하니 사방이 트인 늪지보다는 깊은 산골짜기가 좋을 것이라 하네.”

시황제는 방술(方術)과 더불어 음양과 오행을 깊이 믿었다. 그런데 당시 음양가들의 일반적인 논의는 이러했다.

‘동방은 만물이 처음 나는 곳이며, 서방은 만물이 성숙하는 곳이다. 무릇 먼저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동남(東南)에서 일어나고. 실제로 열매를 거두는 곳은 언제나 서북(西北)이다. 하(夏) 은(殷) 주(周)에서 진(秦)까지는 모두 서북에서 일어나고 번성하였으되, 이제는 다르다. 새로운 천자의 기(氣)도 마침내 번성할 땅은 서북이나, 그 시작은 동남일 것이다.’

아마도 그 같은 논의는 그 무렵 한창 새롭게 개척되는 강남의 왕성한 기운이나 동남이 대개 중원과는 이질적인 초(楚)나라의 옛 땅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황제는 그걸 믿어 진작부터 동남쪽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당장은 시황제가 몸소 대군과 함께 멀지 않은 회계에 와 있는 만큼 소하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유계도 듣고 보니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무리를 이끌고 서남으로 100여리를 더 달아나 망산(芒山)과 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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