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21…백일 잔치 (6)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32분


“오늘 백일 잔치 했다면서요”

“덕분에 무사히 잘 컸습니다”

카운터에는 목욕탕 주인의 아내 경순이 앉아 있었다. 경순이 희향의 손에 잔돈을 건네면서 나무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의 얼굴을 보고는 숨을 삼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운하 목욕탕은 온 밀양의 소문이 모이는 곳이었다. 아내와 딸과 정부가 옷을 벗기 시작하자, 긴 의자에서 몸을 식히고 있던 속옷 차림의 여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귀를 쫑긋했다.

여자는 호기심과 증오에 찬 시선이 얼굴과 젖가슴과 엉덩이에 꽂힐 때마다 축제 기분 같은 흥분감에 싸이고, 참가하지 못한 백일 잔치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었다.

모녀는 시멘트 욕조 부근에 놋대야를 내려놓고 자리를 잡은 후, 나무 대야로 뜨거운 물을 퍼서 몸에 끼얹고 탕 안에 들어갔다.

“앗, 뜨거워라!”

“잠시 몸 담그고 있으면 안 뜨겁다”

“너무 뜨겁다”

“뭐가 그리 뜨겁다고”

“어머니, 물 미지근하게 해 달라고 해라!”

“뜨거운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안 된다. 가만히 참고 있으면 안 뜨거워진다”

여자는 나무 대야를 뒤집어놓고 그 위에 앉았다. 김 때문에 거울이 뿌옇다. 손바닥으로 문질러도 금방 김이 서려 빨간 입술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그만 나갈란다!”

“열까지 세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뜨겁다!”

모녀가 탕에서 나왔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이렇게 후덥지근한데 팔에 난 털은 한 오라기 남김없이 곤두서 있다. 김 서린 거울 속에서, 뚱뚱한 여자가 고개를 비틀고 이 쪽을 보고 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벌써 잠은 깼는데 눈은 뜨지 않고, 눈꺼풀 안에서 꿈 속의 얼굴과 배경이 녹아들었다가 멀어졌다가 하는 때 같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인가? 빛나는 뜨거운 물결이 온 몸을 관통하고, 얼굴과 어깨와 젖가슴에 물보라를 튀기고 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높아지는 심장 소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여자는 앞을 가리는 것도 잊고 탕에 들어갔다.

“어째 어둡다 했더니 전구가 깨졌다. 어머니, 봐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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