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14…삼칠일 (13)

  • 입력 2002년 9월 2일 18시 32분


<줄거리> 우철의 아버지 용하는 정부인 미령과 밀회를 거듭한다. 미령은 용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내아이를 갖고자 산에서 은밀하게 의식을 치른다. 한편 용하의 집은 사내 아이 우근의 탄생으로 북적거린다. 아내 희향이 남편의 불륜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가운데 우근의 삼칠일은 맞아 온 식구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담소한다.

희향은 소원의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면서 초이레 날 본 아랑의 혼을 떠올렸지만, 소원에게는 얘기할 수 없지, 이 아이는 겁이 많으니까.

소원은 아랑이 서 있던 장소로 똑바로 걸어가 난간 밖으로 몸을 쑥 내밀었다.

“어머니, 저기 배다!”

이런 시간에 은어 낚싯배의 등불이 흐르고 있다, 남쪽이니까 역까지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급한 일이 생긴 사람을 태우고 있는 것이리라, 출산? 사고? 병? 친척의 죽음?

“조금 있으면 아랑제다”

“그렇네, 참 빠르다”

아랑제가 끝나면 은어가 줄어들고,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산나리가 피고, 햅쌀로 송편을 빚어 조상님께 제사를 드릴 무렵이면 우근이도 기어 다니고 있으리라.

“나, 아랑제 때 동기(童妓) 하고 싶다. 몇 살 되면 할 수 있는데?”

“시집갈 나이는 되야 되겠재”

“시집은 몇 년이나 있어야 갈 수 있는데?”

“글쎄, 열여섯에 시집간 여자아이도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10년 남았네”

“그렇게 빨리 시집가면 어머니가 외롭다 아이가”

“오빠하고 우근이가 있는데 어떻노” 소원이가 토라진 듯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도 언젠가는 집에 갇혀 남편에게 배신당할 것인가, 희향은 소원이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에그, 우리 소원이, 하나밖에 없는 내 딸”

목소리가 대기중의 침묵에 삼켜지는 듯한 기분이다, 누군가의 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누가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인가? 아랑?

“어머니, 와그라는데?”

딸의 눈이 이상하다는 듯 돌아보고 입술이 미소를 띠고 있다. 어떻게 된 거지? 소원의 얼굴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잠이 부족해서 눈이 침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왠지 무섭다, 희향은 소원의 얼굴을 품으로 끌어당기고, 말을 걸고, 점점 다가오는 어둠으로부터 딸을 보호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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