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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1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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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없이는 국제지원 없어▼
이런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 정권이 새 출발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세계로부터 가급적 더 많은 원조를 끌어내기 위한 또 다른 술책일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유용할 것이다.
중국이 중요한 정치적 개혁 없이 진행하고 있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북한의 선택과 결정을 이해하게 한다. 지난해 2차례에 걸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북한 경제시찰단의 방중이 현재의 개혁 드라이브로 이어진 것 같다. 중국이 초기에 취한 주요 조치의 하나는 가격 개혁과 외국투자에 대한 개방이었다. 과거 북한은 개혁에 착수하지 않고 외자를 유치하려 했다.
북한이 지난달 단행한 가격 및 임금 개혁은 통제경제가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힘이 부쳐서인지, 혹은 절망한 탓인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경제 요소들을 풀어놓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선 개혁은 북한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북한이 얼마 전 개인이 텃밭에서 키운 농산물을 농민시장에 팔 수 있게 한 조치는 공식적인 식량배급 시스템을 잠식했다. 암시장에선 공식 환율인 달러당 2.2원보다 200배 이상 높은 환율로 달러가 거래돼왔다.
그러나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북한이 공장을 운영할 에너지나 자재, 부품이 없다면 생산이 자동적으로 느는 것은 아니다. 또 비료가 없다면 농부들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없다. 북한의 보통 사람들, 특히 노인들에겐 이 같은 변화는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울 것 같다.
만일 김정일 위원장이 진정으로 경제를 회생시키고자 한다면 외부 세계의 도움이 없이는 이를 할 수 없다. 불행히도 워싱턴과 도쿄가 북한의 개혁을 촉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일 양국은 북한이 대화를 원할 경우 경청하겠다는 의사는 밝혔지만 북한이 이들로부터 원하는 돈을 얻어내고 진정한 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예컨대 북한이 적군파 항공기 납치범들을 일본에 송환하는 것은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 시절이라면 외교적 돌파구를 여는 데 충분했겠지만 이들보다 강경한 후임자들에겐 충분치 않을 것 같다. 북한이 워싱턴과 도쿄로부터 상징적인 악수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서울은 북한과 거래할 준비가 돼 있고 이를 기다리는 유일한 정부이다. 그러나 북한은 1년 이상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제의를 거부해온 데다 특히 6월에는 서해교전을 일으켜 햇볕정책의 정치적 입지를 취약케 만들었다.
남북정상회담 후 2년이 지났지만 경제협력 프로젝트는 단 한 건도 실현되지 않았다. 올해 안에 남북철도연결 프로젝트나 개성공단 건설 착공 등과 같은 의미 있는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남북협력은 다음 5년간은 사장될 수도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왜 예측불가능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북한 정권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위험에 놓이게 하겠는가. 시간은 사라지고 있다.
▼지도자가 경제개발 앞장서야▼
불행히도 나는 최근의 남북 장관급 회담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이산가족 상봉과 문화교류는 중요하지만 경협 프로젝트에서 어떤 돌파구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니다. 이달 말로 예정된 2차 남북 경협추진위원회는 아마도 북한이 김대중 정부를 포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만일 북한이 또 한번의 기회를 잡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김대중 정부의 패배 및 햇볕정책의 종언일 뿐만 아니라 한민족 전체에게도 손실일 것이다.
북한이 경제회생을 희망한다면 개혁과 세계로의 개방을 활기차게 추진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소홀히 하거나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이 경제적인 죽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나 한국의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처럼 비전을 갖추고 개발에 헌신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그 같은 능력이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앞으로의 몇 달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피터벡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연구실장 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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