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내사전엔 ‘부동산 불황’ 없다”

  • 입력 2002년 7월 24일 17시 36분


김효상씨(53·가명)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 부동산 투자자’이다.

그의 지론은 부동산 상품의 가격상승 흐름을 활용하는 것. 최근 그가 투자한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작년 말 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영아파트 13평형 급매물을 샀다.

당시 주변에서는 모두 무모하다며 투자를 말렸다. 이 아파트는 99년부터 재건축이 추진됐지만 단지규모(6600가구)가 워낙 큰데다 주민 사이의 마찰이 법정공방으로 비화될 만큼 갈등이 심각해 사업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가 산 아파트는 대출금 1억4000만원에 연체이자도 350만원이었다. 세입자 전세금 4000만원도 해결과제였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투자를 결심했다. 조만간 재건축조합 설립총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재건축조합 총회에서 시공사가 선정돼도 사업이 즉시 본격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총회 자체가 호재로 작용, 일시적으로 집값이 오른다.

예상은 적중했다. 6개월 만에 집값이 2억3000만원으로 뛰었다. 대출금 연체이자와 부대비용을 빼고도 4000만원 정도를 남겼다.

올해 초 과열 논란까지 빚었던 부동산시장은 하락기에 접어드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7개월 만에 미분양아파트가 증가하는가 하면 집값도 제자리걸음이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으로 여윳돈 투자자뿐만 아니라 실수요자까지 시장에서 발을 뺀 탓이다.

하지만 김씨 같은 ‘고수(高手)’들에겐 요즘이 기회다. 순진한 일반투자자들이 몸을 사릴 때 그들은 ‘현란한’ 노하우를 발휘, 시장을 휘젓고 있다.

▽땡처리 부동산 수집형〓기업형 고수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미분양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여 되파는 방식이다.

부동산 개발회사 ‘HOP’의 신도진 사장(43)이 대표 주자. 단순한 중개보다는 부동산을 개조해 가치를 높이는 것이 그의 노하우다.

최근 그가 사들인 인천 도화동 20층짜리 빌딩은 임대가 안 돼 방치됐지만 클리닉센터와 오피스텔, 사무실, 상가로 리모델링해 분양 중이다. 당초 빌딩 시세는 140억원선이었지만 실제 매입가격은 훨씬 낮다는 게 신 사장의 귀띔. 그나마 매입금액의 90%는 대출로 충당했다. 빌딩의 총 분양가가 198억원인 만큼 수익률은 엄청나게 높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재료포착형〓주로 재건축아파트를 전문으로 하는 고수들이다.

재건축아파트는 안전진단, 시공사 선정, 지구단위계획 수립, 조합설립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현실적으로재건축이 불가능하거나시기가지연된다고 해도 사업단계를 거칠 때마다 가격은 뛰게 마련이다.

재료포착형 고수들은 이를 감안해 적절한 시기에 아파트를 사서 값이 오르면 바로 빠져 나온다.

최근에는 재료를 교환하기 위한 인터넷 동호회도 활발하다. 하지만 대부분 폐쇄적으로 운영돼 일반인의 참여는 힘든 형편이다. 정보가 곧 돈인 만큼 고급 재료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들만 가입을 허용하겠다는 것.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일부 동호회는 참가 신청자의 직장이나 거주지는 물론 자금 동원력과 투자경력까지 따질 만큼 가입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규제회피형〓정부 규제가 닿지 않는 종목에만 집중 투자하는 유형. 아파트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면 조합원 분양권에만 투자한다거나 세무조사를 의식해 ‘중간생략 등기’를 하는 등의 방식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아파트의 조합원 분양권은 일반 분양권과 달리 전매제한 조치에서 제외된다. 중간생략등기는 계약금만 내고 잔금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되파는 것. 행정지도는 가능하나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다. 미등기전매와는 다르다.

F컨설팅 관계자는 “행정당국이나 일반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이들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집중분석형〓서울 등 대도시보다 전망이 불투명한 경기도 일대 소도시 아파트에 투자하는 이들의 전형. 여러 채를 매입해 시세차익을 얻는 박리다매형이다.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치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입지여건과 단지규모는 물론 가구당 대지면적, 학교용지 해결 여부, 시내까지의 거리, 관할 지자체의 도시계획 등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자랑한다.

▽자신 있는 종목만 투자〓고수들의 공통점은 ‘아는 종목만 투자한다’는 것. 흔히 주택시장이 기울면 토지시장을 넘보고 그게 안되면 상가로 방향을 트는 초보 투자자들과는 다르다.

금융상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고수들의 비책(秘策). 워낙 단기매매에 치중하는 만큼 자금관리가 실력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로 집값의 대부분을 충당하고 이자는 마이너스통장을 활용해 지불하는 등 고수들의 투자기법은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에서 출발한다”고 전했다.

‘떴다방’식 불법거래를 ‘사도(邪道)’로 취급하는 것도 고수들의 특징이다. 1회성 투자가 아닌 만큼 법 테두리 안에서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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