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재훈/슈퍼세균 전문가 키워라

  • 입력 2002년 7월 17일 18시 35분


최근 국내의 병원들에서 분리된 녹농균 등에서 기존의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효소가 발견되어 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또한 2주 전 미국질병통제국(CDC)에서는 인체 감염의 가장 흔한 원인균인 포도상구균의 마지막 치료제라고 하던 ‘반코마이신’에도 고도 내성을 보이는 포도상구균(VRSA)을 세계 최초로 환자 몸에서 검출함으로써 소위 ‘슈퍼박테리아’의 확산 가능성을 경고하였다. 이는 1990년대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범세계적인 위기로 떠오른 항생제 내성의 새로운 예들로서 내성의 문제가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官-經-學 손잡고 대책마련을▼

항생제 내성이란 세균이 항생제를 분해하는 효소를 분비하든지 혹은 세균 스스로 변이를 하여 항생제의 살균작용에 저항하는 현상으로 항생제 치료의 실패로 이어진다. 항생제는 1940년에 페니실린이 도입된 이래 감염질환으로부터 수많은 인명을 구함으로써 ‘기적의 약’으로까지 불렸으며 현재 사용되는 의료 약품들 중 일반인에게 가장 친숙한 치료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60여년간 수백종의 항생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항생제 내성의 문제가 심화되었으며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항생제 내성의 문제가 21세기 의학이 당면할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세균 감염이란 어느 누구도 걸릴 수 있는 보편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이를 완치하는 항생제의 효력이 없어진다면 그것이 공공 보건에 미칠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항생제 내성의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이미 세계 각지에서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치료 상의 문제점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포도상구균 이외에도 폐렴의 가장 흔한 원인균인 폐렴구균, 또 다른 중요한 병원 감염균인 장구균, 그리고 이번에 보고된 녹농균, 결핵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원인인 HIV 등 인류에게 감염증을 일으키는 거의 모든 미생물이 치료제인 항생제에 내성을 보임으로써 현대 의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는 항생제의 개발을 무색케 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은 항생제를 사용하는 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성의 발생을 최대한 줄이고 확산을 저지하는 것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처 방법이다.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일깨운 토론토선언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의 출현 및 확산을 지속적으로 조사 연구하고 환자는 물론 동물이나 가축에게 항생제를 오남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새로운 항생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되는 주요 대책이다. 이 중 내성의 발현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항생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 발현의 필요 충분조건이 항생제의 광범위한 사용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 의사, 약사, 제약업계, 정부 모두 합심하여 항생제의 오남용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가축이나 동물에서 일부 항생제를 성장촉진제로 남용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

아울러 내성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항생제 내성이 한 지역 내에서는 물론 국가 간 혹은 대륙 간에도 전파되므로 국제적인 협력을 통하여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필자가 조직한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연합(ANSORP)’이 14개국의 26개 병원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유일한 국제공동 연구기구로서 항생제 내성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미생물 연구지원 늘려야▼

이러한 국제 공동 대처와 더불어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거대 제약회사들이 많은 연구비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항생제 개발 프로그램을 축소 또는 폐지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내성의 문제가 계속 심화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신약의 부재로 인해 10년 후쯤에 실제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완치 가능하던 많은 감염 질환들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등장하는 항생제 내성의 문제에 보건 당국, 학계, 제약업계가 합심하여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정책적으로 감염질환이나 미생물을 전공하는 전문가를 육성하여야 하고 이 분야의 기초 연구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송재훈 성균관대 교수·감염내과학, 아시아태평양감염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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