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주식 팔 때 허락받으라고?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59분


“최근의 주가하락은 미국 증시 불안에다 국내 은행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팔아치운 데서 비롯됐다.”

증시가 침체상태에 빠지자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국내 은행들의 손절매(loss cut)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 만큼 앞으로는 금융기관의 손절매 행위를 집중 감독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시중은행들이 지난달에 8000억원이 넘는 순매도를 보이며 기관투자가 가운데 가장 많이 주식을 팔아치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손절매란 말 그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손실이 나면 무조건 투자를 중단하는 것’으로 파산을 피하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기법. 영국의 베어링사나 미국의 롱텀캐피털 등도 손절매 규정을 지키지 않아 회복 불능의 손실을 입고 파산하거나 중앙은행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이런 정황 때문인지 당국의 대책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길은 매우 차갑다. 증시 급락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된 시중은행의 한 간부는 “주식을 파는 것도 감독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도대체 시장은 왜 있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증권사 대표는 “주가가 떨어지면 기관투자가를 탓하는 행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이 제기되자 금감위와 재경부는 서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인다.

금감위 고위 간부는 “저쪽(재경부)에서 그런 자료를 만들어 왔기에 읽어보니 썩 공감이 가지는 않는 내용이었다”며 깊이 있는 진단과 대응은 아니었음을 내비쳤다.

재경부 관계자는 “우리보다 시장에 가까이 있는 금감위와 금감원에서 시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제 떠넘기기식 진단과 생색내기 대책 마련은 그만둬야 한다. 한국축구는 월드컵 4강이란 ‘선진 축구’에 진입했는데 증시정책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동원기자 경제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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