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북자 받지 말라니

  • 입력 2002년 6월 8일 23시 03분


중국 정부가 우리 측에 “탈북자들이 한국 공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협조해달라”, “한국 대사관이 보호중인 탈북자 5명을 조건 없이 넘겨달라”는 뜻밖의 요구를 했다고 한다. 중국은 탈북자를 받아들여 이미 제3국으로 보낸 미국 등 다른 나라에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중국이 한국을 다른 국가와 차별적으로 대하겠다는 것이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박해와 기근을 피해 외국 공관에 뛰어든 탈북자의 최종 목적지 결정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관한 것으로 결코 나라에 따른 차별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이다. 중국은 그들의 운명을 놓고 상대방의 국력 크기에 따라 처리 방법을 구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독일 공관으로 들어간 탈북자의 제3국행은 인정하고, 한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의 요구는 묵살한다면 국제사회는 중국의 협량(狹量)을 비웃을 것이다.

한중간 현안이 된 탈북자 5명은 지난달 23일 이후 한국공관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중국의 무리한 요구로 이들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으나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부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탈북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국제적 원칙에 따라 문제를 풀어야 한다. 미국은 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미 대사관으로 피신한 중국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의 망명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1년 이상을 협상하지 않았는가. 정부는 최소한 다른 나라 공관에 들어간 탈북자의 전례(前例)에 따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국의 압력에 원칙을 포기하는 ‘나약한 외교’를 하면 안 된다.

탈북자의 한국 영사부 진입을 계기로 한국공관이 탈북자의 한국행 통로로 정착될 것이라는 중국 측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탈북자 문제는 이미 한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이슈로 확대됐다. 중국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당사자의 하나인 우리 정부와 근본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공식 협의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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