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추억 속의 종로서적

  • 입력 2002년 6월 5일 19시 17분


서울 종로2가 일대는 대표적인 ‘젊은이 거리’다. 같은 종로거리라도 한 블록만 건너가면 그렇지 않은데 이곳은 늘 10대 20대들로 북적거리는 게 신기하다. 어느 건축가는 압구정동이나 홍익대앞 같은 특정 거리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놓고 ‘거리의 권력’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거리 자체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논리적 설명이 어렵긴 하지만 사람들이 특정 거리를 자주 찾는 이유는 교통과 편의성 이외에 심리적 문화적 배경도 있다. 장기간에 걸쳐 다니다 보니 습관처럼 돼버렸다든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듯한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종로2가 하면 떠오르는 약속장소는 종로서적이었다. 큰길 쪽으로 나앉아 있어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100년 가까운 세월을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탓도 있다. 옛 사진자료를 들춰보면 종로서적 건물은 원래 한옥 형태로 되어 있었다. 1907년 문을 열었으니까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이 서점이 오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대로 문을 닫는다면 젊은이들은 물론 이 책방에 추억을 지닌 나이든 세대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거리의 모습은 너무 빨리 바뀌고 있다. 종로거리는 옛 서울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대로(大路)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일대 과거 건축물들은 20, 30년 전 것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문화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20세기 이후 근대건축물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해당 건축물은 대부분 철거된 뒤였다. 이처럼 모든 게 급속히 바뀌는 사회에서 특정 장소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종로서적이 같은 자리에서 95년을 버텨준 것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외국처럼 연륜을 더해가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을 갖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종로서적이 책을 팔고 사는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 남는다. 국내 서점 수는 96년만 해도 5000개가 넘었으나 최근 3000개 정도로 줄었다. 인터넷 책판매 시장이 커지고 기존 책방들이 소비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책방의 감소는 책을 뒤적이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문화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종로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 중에는 종로거리가 갖는 문화적 기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종로서적이 없는 종로거리는 왠지 허전해 보인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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