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투병 요청’ 적절치 않다

  • 입력 2002년 5월 28일 18시 19분


미국측이 지난달 이후 수 차례에 걸쳐 한국 전투병의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타진해 온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측이 외교경로를 통해 정식으로 전투병 파병을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은근히 기대를 표시하고 있어 한국 정부는 상당히 부담감을 느낄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미국이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도 적극 동참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한국은 이미 아프간 전쟁에 의료지원단과 수송기 전차상륙함 등을 보냈고 그 정도 지원이면 미국의 우방으로서 충분히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측이 작년 말 아프간에 한국의 특전사 병력을 파병해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했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다. 미국측이 그래도 계속 전투병 파병을 타진한다면 그것은 한국에 대한 압력으로 비칠 수 있다.

더구나 현재의 아프간 전황이 한국의 전투병력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아프간에 있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상당수가 임무교대를 할 시점이어서 미국측이 한국측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의 형편은 이미 아프간에 전투병력을 파견하고 있는 유럽이나 기타 국가들과는 다르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다 파병과 관련된 국제적 관계나 지리적 여건도 그들 국가와 같지 않다.

또 한국 정부가 전투병력을 보내려 해도 국회 동의 등 국내절차를 거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한국민은 6·25라는 동족상쟁의 비극을 겪은 데다 베트남 파병의 경험도 갖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어 전투병력 해외 파병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현실적 한계 때문에 아프간에 전투병력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측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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