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5…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25)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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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가 물을 먹이자 무당이 숨을 몰아내쉬며 눈을 번쩍 뜬다.

무당3 소녀가 바다에 뛰어들면서 자기 이름을 불렀어. 내 귀에 그 이름이 맴돌고 있다.

무당2 (밀양 아리랑을 슬렁슬렁 부른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무당은 유미리의 귀에 입을 대고 이름을 속삭인다.

무당3 소녀의 이름에 너 얼굴로 대답하라, 소녀의 얼굴에 너 이름으로 대답하라.

유미리 ….

무당3 알았나?

유미리 네.

무당3 소녀를 이 씨 집안의 며느리로 맞아들여라.

유미리 네?

무당3 이우근의 색시로 삼으라 말이다. 그 소녀나 이우근이나 장례도 못 치렀어. 영혼 결혼 굿을 해야 돼. 두 사람의 혼이 부부가 되어 밀양으로 돌아오면, 너거들을 지키는 조상신이 돼 줄 거다.

무당2 (방울을 흔들면서 노래한다) 정든 님을 만났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 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무당3 (목소리와 눈에서 힘을 다 빼고) 기도하거라.

박수 (북을 두드리면서 경을 읽는다) 나무하늘이시여 구척신력이니 태정칭….

무당3 한참 걸리니까 편안히 앉아.

유미리와 이신철은 나란히 앉는다.

박수는 경을 왼다. 부처님께 예를 올려 소원이 성취되었나니, 지금 죽은 자의 영은 하늘이 되었음에, 장엄하게 염불을 외나이다. 나무아미타불….

한 시간이 넘도록 독경이 계속되는데, 둘은 눈을 감은 채 합장하고 있다.

이신철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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