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김을분 할머니 손녀의 글 전문

  • 입력 2002년 5월 13일 16시 20분


할머니는 영화 촬영이 끝나고 많이 슬퍼하셨어요.

감독님과 승호, 스텝분들과 정이들어 영화끝나고 사람과 헤어졌더니 마음병이 드셨나 봅니다.

그때까지 이 영화가 지금처럼 뜨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해 3월 할머니는 평생 극장에 처음이었지만 저도 시사회라는것은 처음 가봤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여러 방송사에서도 오고...

원래 시사회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정향 감독님의 영화라서

더 몰렸는지...아무튼 그날 엄청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튜브 사장님이 이 영화는 문화영화가 아닌 ' 상업영화 ' 로서 앞으로 한달간 '집으로' 대국민 시사회를 한다고 했어요.

그말이 신경이 쓰였지만 사실 그때까지도 우리 식구는 물론 영화관계자분들도 이렇게 흥행이 될지는 몰랐을겁니다.

그날이후 튜브분들의 요청에 따라 할머니는 아무 대가없이 그 힘드신 몸으로 극장 인사와 인터뷰, 저는 할머니덕에 처음으로 방송국에 가서 임성훈 아저씨를 볼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몇주동안 홍보활동을 하시고 할머닌 몇일간 아퍼서 누워 계셨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정말 거짓말처럼 엄청 흥행이 되고 50만이 넘으면서부터 우리집에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불행은 시사회 끝나고 나서 부터였습니다.

그날 시사회때 마을주민 분들도 같이 버스로 올라오셨거든요.

마을 주민 여러분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갈때 모든 분들이 할머니에게 돈 얼마를 벌으셨는지 물으셨고 할머니가 대답을 안하시니까 엄청 많이 받으셨다고 생각을 하셨나봐요.

그날 시사회 기자회견 자리에서 어떤 기자분이 질문하신 할머니 출연료 이야기에 튜브 사장님께서 이야기 하시길 " 너무 많이 줘서 이야기 못한다" 는 말이 시골분들에게는 진짜로 들렸나봐요.

그리곤 시골에 마을 뿐만 아니라 읍내까지도 할머니는 돈을 많이 번 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할머니 집을 기웃기웃 거리시는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기자분들도 많이 왔었지만 할머니 집을 힐끔 거리며 할머니 주변 이웃분들에게 할머니가 영화출연을 해서 얼마나 버셨냐고 물어봤었다는군요.

할머니가 읍내에 내려가면 모두 얼마나 버셨는지 그 질문 뿐이랍니다.

영화가 잘되는것이 모든이들의 눈에는 할머니가 돈을 버시는지 아시나 봅니다. 우린 처음 출연료 이외에는 아무것도 받은것이 없는데도 말이죠.

그 일이 있은후에 할머니는 200만 돌파하기 직전에 잠시 내려가서 호도나무에 비료주시고 축제 참여한후에 줄곧 서울 우리집에 올라와서

아무곳에도 못나가십니다.

서울에는 오히려 알아보는 분이 많아서 나가실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200만 돌파때 아빠가 할머니를 모시고 올라오시면서 읍내 동사무소에 다니는 후배에게 들었던 할머니 집 위에있는 영화 촬영장소를 영동군과 튜브가 관광상품을 만든다고 들었던 아빠는 더이상 할머니가 고향에서 살수 없다고 그때부터 결심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집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50만 돌파때 이후부터 계속울리는 전화에 늦게 일나가시느라 늦게 일어나시는 아빠, 엄마는 잠을 잘수가 없었고 어떻게 아셨는지 기자분들의 초인종 누르는 소리에 고3인 제 남동생은 공부를 할수없을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랄일이 생긴것이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어느날 둘째 언니가 놀라 뛰어들어왔습니다.

밖에서 건장한 남자 두명이 우리집을 기웃거리며 보고 있는것을 언니가 본것이었습니다. 언니가 본것을 알아채자 냅다 도망을 갔다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제 남동생의 말은 더 놀라웠습니다. 저런 사람을 본게 2~3번이 된다는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집에서 산지가 20년이 가까이되어 아시는 분들은 할머니와 우리식구를 아는게 화근이 된거 같습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도 이번영화의 성공이 우리가 떼돈을 번줄 아시나 봐요. 100만, 200만에 따라 점점 더 우리집은 여러 사람들 사이에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나 봅니다.

우린 영화 흥행과는 무관한 사람들인데...

복권 탄 사람들이 왜 자신의 집에서 못산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요즘 와닿는지 모릅니다.

결국 우린 할머니의 집과 우리집을 떠날수 밖에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할머니 집의 경우 튜브분들과 충청도가 관광화 한다고 하니 다른 판단을 내릴수가 없었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빠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 결심을 하셨습니다.

아빠일은 하시면서요. 아빠와 엄마가 일하는곳도 언론에 알려졌다고 했지만 할머니 집이나 우리 집같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나봐요.

그곳에서 일한것도 얼마 안되 주변분들도 잘 모른게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흥행이 더 잘되면 그곳도 떠나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서울 근교에 작은 집과 할머니가 고향에서 하시던것과 같이 소일거리를 할 작은 땅을 구해드리려고 맘을 먹고 새벽에 들어오셔서 아침잠도 안주무시고 목요일부터 알아보셨나 봅니다.

어디 장소라고 이야기하면 또 전같은 일이 생길까봐 말을 못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집이 비싸서 아빠는 생전 해본적이 없는 여러 친적분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나 봐요.

그런데 잘 안되셨나 봅니다.

아빤 몇일간 잠도 못주무신게 원인이었는지 눈마저 떼근한 모습으로

힘이 쭉 빠져서 멍하니 앉아 계신 모습을 보고 그만 방에 와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많이도 생각 했더랍니다.

할머니가 영화에 출연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집은 넉넉하진 않지만

늘 행복한 집이었는데...

할머니의 영화가 성공하지 않았으면 할머니와 우리는 떠날 필요가 없었을텐데...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테입을 소장하려는 작은 바램이었는데...

그리곤 이렇게 여기에 글을 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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