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스타]엘 하지 디우프
골에굶주린 갈색킬러

  • 입력 2002년 5월 1일 17시 57분


90년 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에서 전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격침한 팀은 아프리카의 카메룬이었다. 12년이 지난 2002년, 이번에는 아프리카 세네갈이 2002월드컵 개막전에서 전 대회 우승팀인 프랑스를 상대로 파란을 다짐하고 있다.

세네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1일 현재 43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계 최강 프랑스가 100% 완승한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다. 20세기 후반 아프리카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일으킨 숱한 이변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대회 최대 뉴스로 기록될 또 한차례의 이변이 생긴다면 세네갈 간판 스트라이커 엘 하지 디우프(21)가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침 적의 심장부인 프랑스 1부리그 명문 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세네갈이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고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있게 말했다. 1일 자국 협회의 월드컵 준비 상황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도 그가 이번 월드컵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세네갈 언론은 그를 ‘연쇄 킬러(Serial Killer)’라고 부른다. 또는 ‘갈색 크루이프’라고도 한다. 유쾌한 별명은 아니지만 ‘킬러’쪽이 딱 들어맞는다. 상대 문전에만 가면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게 골을 결정짓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다.

고비마다 반드시 골문을 열어제치는 디우프의 킬러 본능은 기록이 입증한다. 지난해 월드컵 아프리카지역 최종예선때는 4경기에서 8골을 잡아내 팀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최근에는 27일 프랑스 1부리그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두고 치른 겡강프전에서 2골을 몰아 넣어 소속팀이 이날 역시 경기를 이긴 2위 리옹의 추격을 뿌리치고 선두를 유지하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슈팅때를 제외하면 디우프는 그라운드의 자유인이다. 그가 선보이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볼터치,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는 아프리카 축구의 정수를 담고 있다. 올초 아프리카 선수권대회 나이지리아와의 준결승전에서는 미드필더 사르가 퇴장 당하는 바람에 수적 열세속에 원톱으로 나서고도 이같은 개인기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라인을 어린애 다루 듯 농락,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 축구의 장점까지 체화한 그의 전술 이해도는 프랑스 간판 지네딘 지단 못지않다. 늘 전체 밸런스를 생각하며 자유자재로 위치를 바꿔 최전방 스트라이커부터 플레이메이커, 수비 역할까지 일인 십역을 거뜬히 해낸다. 팀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나 스페인 리그 진출을 노리는 디우프를 두고 “2000만달러는 받아야 그를 팔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제르바이스 마르텔 랑스 구단주의 말은 그의 가치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디우프는 자신의 축구가 고향인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길거리에서 싹텄다고 말한다. 95년 세네갈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이후 프랑스 2부리그팀 소쇼 유소년클럽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자신의 골 결정력 만큼은 어린 시절 흙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완성됐다는 얘기다. 프랑스 귀화 가능성에 고개를 내젓는 것도 고향의 흙먼지를 못잊어서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두얼굴의 사나이’ 디우프

‘연쇄 킬러’ 외에도 디우프에겐 별명이 많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얼굴의 사나이’. 우아함과 힘, 쾌활함과 냉철함을 겸비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라운드 안팎의 생활 태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세네갈인들이 그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공 스토리’나 ‘멋진 골’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보다 팀 전술과 동료들의 플레이를 살리는 방향으로 경기에 임하는 희생 정신과 모두가 떠난 연습 그라운드에 늘 홀로 남아 비지땀을 쏟아내는 성실함 때문이다.

하지만 사생활 얘기가 나오면 모두 고개를 젓는다. 프랑스 랑스 클럽에 정착하기 전까지 감독들과 숱한 마찰을 일으켜 소쇼, 레느 클럽에서 퇴출됐고 특히 레느 시절엔 무면허로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 초 아프리카 선수권 직후에는 고향에서 빈둥대다 소속팀 합류 날자를 어겨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올해의 아프리카 선수’로 선정되고도 숱한 자격 시비에 휘말렸다.

이와 관련 디우프의 입장은 명확하다. 최근 전세계 네티즌과의 BBC 스포츠 온라인 인터뷰에서 그는 “원래 유명인이 되면 비판을 많이 받는 법”이라며 “주변 바보들의 말에 신경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디우프는 누구

▽생년월일=81년1월15일

▽출생지=세네길 수도 다카르

▽소속팀=프랑스 소쇼→르네→랑스

▽포지션=FW

▽체격=1m80, 7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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