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VOLVO "바꾸지 않곤 바뀔수 없다"

  • 입력 2002년 5월 1일 17시 57분


스웨덴 볼보가 한국의 만년 적자 기계공장에 ‘마술’을 걸었다.

삼성그룹에서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던 삼성중공업 기계사업부를 화려한 백조로 변신시킨 것. 볼보는 98년 7월 삼성중공업 기계사업부문을 7억2000만달러에 인수해 2000년과 2001년에 각각 253억원과 5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기존 임직원을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경영(Change Management)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사에서 신기술을 들여 온 적도 없고 외부의 경영자문단이 회사를 점령해 직원들을 밀어붙이지도 않았다. 외부 수혈인력은 사장과 재무담당 부사장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체면은 필요 없다〓볼보의 재무담당 부사장인 제니스 리는 “1400명의 임직원에게 가장 먼저 불어넣은 원칙은 원가개념”이라고 말했다.

“새 경영진이 재고가 많으면 라인가동을 즉각 중단시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노사분규나 홍수가 아니면 회사 스스로 생산라인을 중단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창원공장의 한 중견간부) 현재 굴착기 평균재고량은 12대로 하루 생산량(3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과거엔 재고가 평균 750대였다.

“볼보 이전엔 20여년간 대우 현대와 ‘체면 경쟁’을 벌여왔다. 경쟁사가 신상품을 내놓으면 원가계산도 제대로 하지 않고 모방상품을 생산했다. 골프카트까지 만들었다. 이익보다는 매출액과 시장점유율에 신경을 썼다. 많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계속됐다. 볼보는 이 악순환을 과감하게 끊었다.”(석위수 공장장·부사장)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볼보 문화는 2000년 5월 모(母)회사인 볼보자동차를 미국의 포드자동차에 매각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후 볼보는 건설기계, 항공정비, 트럭, 버스, 선박용 엔진, 금융 등 사업영역을 6개로 나누어 글로벌경영을 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게임의 룰’을 바꾼다〓안토니 헬샴 사장은 취임 직후 13개에 이르던 생산품목을 굴착기 하나로 줄였다. 대신 굴착기를 다양화했다. 세계 건설기계시장의 45%를 차지하는 굴착기에 전력을 집중시킨 것. 가격경쟁도 포기했다. 외환위기 이후 수요가 급감했지만 값을 내리지 않았다. 일단 삼성브랜드로 팔다가 제품의 질이 볼보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올라가자 99년 말부터는 상표를 ‘볼보’로 바꾸고 값을 올리면서 수출시장을 개척했다.

‘짠돌이’ 경영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설정한 핵심가치인 ‘품질 안전 환경’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을 들여와 제품의 질이 높아진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품질을 중요시했지만 볼보처럼 완벽을 추구하지 않았을 뿐이다.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팔고 난 후 애프터서비스로 해결하려던 관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최철곤 생산기획팀장)

이 같은 노력의 결과 98년 3 대 7에 이르던 수출과 내수비중이 작년에는 7 대 3으로 역전됐다. 10%대까지 떨어졌던 국내시장 점유율도 35%까지 회복했다.

▽경영혁신에 최고경영자(CEO)의 자리를 걸어라〓경영혁신에서는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헬샴 사장은 직원들에게 변화경영이 왜 필요한지 끈질기게 설득하고 직원들 스스로 변화의 주인공이 될 것을 요구했다.

경영혁신을 유행상품처럼 도입했다가 저항에 부닥치면 과거로 돌아가고 새로 온 CEO가 또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아 직원들의 진을 빼는 일은 없었다. 그룹 이사회도 헬샴 사장을 믿고 끝까지 지원했다.

조직을 바꿀 때도 한꺼번에 하기보다는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대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도록 했다. 동양의 배수진(背水陣) 전략을 서구 경영자가 응용한 것.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이 같은 방식으로 3년에 걸쳐 기능별 조직을 수직조직과 수평조직이 혼합된 매트릭스조직으로 재편했다. 부서간 장벽을 허물어 모든 임직원이 연구개발, 재무, 마케팅 생산 등 기능별 부서는 물론 수백개의 프로세스팀에 동시에 소속된 것이 매트릭스 조직의 특징.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경영혁신 사례를 연구 중인 서울대 경영대 박철순 교수는 “전략, 사고방식, 시스템을 완전히 혁신시켜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볼보의 경영혁신은 한국기업의 ‘축소지향형 단기적 구조조정’과 차원이 다르다”며 “이 회사의 변신은 한국에서 변화경영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창원〓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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