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올 챔프전은 ‘용병’ 대 ‘토종’ 싸움

  • 입력 2002년 4월 11일 17시 36분


2001∼2002애니콜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동양 오리온스가 챙긴 점수는 70점. 이중 딱 절반인 35점을 마르커스 힉스 혼자 챙겼다. SK 나이츠 서장훈을 막느라 수비에 치중한 라이언 페리맨(5점)이 공격에서 부진했지만 용병 2명이 팀 전체 득점의 57%를 책임져 ‘용병이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공식보다 더 나은 활약을 펼친 셈이다.

반면 SK의 상황은 동양과 정반대. 용병들이 경기의 주도권을 쥔 현실에서 두 명의 용병 모두 문제가 생기며 토종 위주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올 시즌 팀을 챔프전까지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운 에릭 마틴은 왼쪽 발목 피로골절에다 KCC 이지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때 다친 오른쪽 무릎마저 물이 차는 등 상태가 악화돼 챔프전 들어 20분 이상을 뛰지 못한다. 또 ‘수비 달인’ 로데릭 하니발의 대체 용병으로 뛰고 있는 찰스 존스는 기량 미달로 아예 2차전 출전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됐을 정도로 ‘무늬만 용병’이다.

결과적으로 올 챔프전은 ‘용병(동양)과 토종(SK)의 맞대결’이란 구도가 형성됐다.

포지션별 선수들의 분업화가 워낙 잘 이뤄진 까닭에 동양이 2차전까지 내민 카드는 비교적 간단했다. 힉스를 공격의 전면에 내세우고 대신 페리맨은 서장훈을 상대로 한 ‘사석작전’을 펼친 것. 페리맨의 공격 가담은 떨어지더라도 서장훈의 발목만 잡으면 성공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1차전에서는 성공했지만 2차전에서는 ‘영리한’ 서장훈이 페리맨의 의도대로 놀아주지 않는 바람에 팀도 패했다.

동양 김진 감독은 2차전 패배 뒤 “어쨌든 챔프전의 승패는 서장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느냐에 달렸다”며 “앞으로도 페리맨을 중심으로 한 협력수비로 서장훈 막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는 SK는 두 차례의 맞대결을 통해 일단 토종들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은 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여기고 있다.

윤제한 허남영 석주일 박준용 김종학 등 식스맨을 중심으로 인해전술을 펼치는 ‘벌떼작전’으로 동양의 주포인 힉스와 전희철을 집중견제하는 데 성공한 것. 이를 위해 1차전 10명, 2차전에서는 9명이 투입됐다.

최인선 감독이 2차전 승리 뒤 인터뷰에서 존스를 투입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단언하건대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존스를 기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토종들에 대한 신뢰 표시뿐만 아니라 ‘존스는 아예 믿지 말라’는 위기의식을 불어넣기 위한 다목적 포석의 측면이 짙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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