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퇴임 이후

  • 입력 2002년 4월 2일 18시 40분


“클린턴은 대화할 때 항상 상대방의 눈을 직시한다. 자기가 말할 때건 상대방 말을 들을 때건 시선은 반드시 상대방 눈동자에 고정돼 있다. 심지어 콜라를 마실 때에도 얼음이 가득 든 유리잔 바닥을 통해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클린턴은 열렬한 콜라 애호가라고 한다)….” 워터게이트 특종보도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몇 해 전 미국의 한 대학 강연에서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했다. 상대방, 특히 여성의 마음을 휘어잡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는 클린턴의 의사소통 능력을 설명해주는 한 가지 에피소드다.

▷그런 재능을 그냥 썩히기는 아까웠을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요즘은 인기 있는 강연자로 나섰다는 소식이다. 퇴임 이후 14개월 동안 세계 6개 대륙의 30개국에서 약 200회 강연을 하면서 연간 1000만∼15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를 보도한 ‘뉴스위크’는 “펭귄들이 돈을 모아 초청하면 그는 남극대륙에라도 갈 것”이라고 풍자했다.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 권좌에서 물러난 그가 과연 무슨 일을 벌일지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궁금증은 이제 풀렸다. 일단은 재임 시 이런저런 소송으로 진 빚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 돈을 버는 것으로 판명됐으니까.

▷대통령 개인의 성공적인 인생 결산을 위해서는 ‘재임 시’만큼이나 ‘퇴임 이후’도 중요할 것 같다. 재임 시의 영화(榮華)는 결국 한 순간일 뿐 인생은 그보다 훨씬 다차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의 모범적인 사례가 작년 8월 ‘사랑의 집짓기 운동’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다. 그는 재임 시에는 갖가지 정책 실패로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퇴임 이후에는 세계평화와 빈곤타파 등을 위한 활동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카터의 출신 지역인 미 남부 사람들은 그를 ‘엉클 지미’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다.

▷우리에게도 지금 전직 대통령이 네 명(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이나 생존해 있다. 그런데 이따금씩 해외여행이나 강연을 갖는 것 외에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렇다 할 대외활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재임 시에 쌓은 ‘업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돌이켜보면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실수를 했지만 그런 실수들이 나를 겸손하고 강하게 만들었다”는 클린턴의 말은 그래서 더욱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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