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3월 10일 18시 4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997년 대통령선거 때에도 당내 경선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선은 당원이 아닌 국민을 대거 참여시킨 국민참여 경선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따라서 이번 경선은 ‘제대로’ 시행되기만 한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한국의 정치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선은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민주당 경선은 막대한 금품 살포, 인위적인 선거인단 동원, 인신공격 등으로 얼룩졌다. 급기야 일부 후보가 불공정을 이유로 경선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후보자간 불법비판 가중▼
한나라당은 경선을 시작하기도 전에 박근혜 의원이 불공정을 이유로 탈당해 버렸고,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홍사덕 의원 역시 돈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이 와중에 온갖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난무하면서 각 당의 경선은 더욱 김이 새고 있다.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현재 경선에 참여 중이거나 그것을 거부하고 탈당한 사람이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배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경선이 신바람 나고 모양 좋게 치러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 경선은 안팎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된 첫째 원인은 게임의 규칙, 즉 경선제도의 미비에 있다. 경선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정치자금 문제인데, 현행 선거법 어디에도 이에 관한 규정이 없다. 후보가 경선을 위해 어디서 얼마를 조달해 얼마까지 쓸 수 있고, 그것을 감시하고 검증하는 제도적 절차가 무엇인지 현행법에는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후보자들간에 불법과 혼탁을 둘러싼 비판이 가중되고 있고, 경선 포기 내지는 불복의 위협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선을 거울삼아 정치권은 하루 빨리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의 정치관계법에 당내 경선과 관련된 법 규정을 정비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선이 위기에 처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선 주자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있는 것 같다. 첫술부터 배부를 수 없듯이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경선 주자들은 미비된 제도나마 존중하고 지킨다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처럼 시작된 경선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경선 참여자들은 지금부터라도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첫째, 경선 과정이나 결과에서의 흠을 꼬투리 삼아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199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우리는 이미 경선 불복의 좋지 않은 전통을 지켜본 바 있다. 이번 국민참여 경선에서는 정계개편의 움직임과 맞물려 탈당 러시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경선을 탈당의 명분 쌓기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경선이라는 축제를 통해 당이 단합하고 앞으로 있을 대선에서 이기자는 것이 두 당 모두 경선제를 도입한 취지일 것이다.
▼제도 미흡해도 일단 지켜야▼
제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주자들이 룰을 조금씩 위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선 주자들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자신이 이기면 공정하고 남이 이기면 불공정하니 불복하고 탈당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참여한 이상 설사 제도가 미흡해도 끝까지 가는 것이 정도다.
둘째, 경선 참여자들은 당내 경선이 대선 레이스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은 지금 지켜보고 있다. 누가 공정한 경선을 거친 후보이고 누가 불법 타락선거로 후보가 되었는가를, 그리고 중도에 뛰쳐나갔거나 결과에 불복한 후보가 누구인지를. 시작부터 게임의 룰을 어긴 후보는 비록 그가 경선에서는 성공할지 몰라도 대선이라는 최후의 게임에서까지 웃는 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두 이 점을 유념하고 첫 단추를 잘 끼우길 바란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