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의 북한불신 뿌리깊은데

  • 입력 2002년 1월 30일 18시 27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어제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軸)’이라고 단언했다. 1년 전 첫 한미정상회담 때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다”는 표현으로 드러낸 그의 북한 불신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강해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대량파괴무기로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 적국으로 상정하고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상하원 의원들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이 가장 파괴적인 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다짐을 박수로 지지했다.

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인식이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관점과 이토록 다른가. 북한이 주민들은 굶기면서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정치선전장이 될 아리랑 축전에 관광단 파견을 검토할 정도로 북한에 대해 유화적이기만 한 정부의 태도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김 대통령은 엊그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와의 만찬회동에서 “아리랑 축전에 학생들을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미 학생이 아닌 사람들은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마침 다음달 중순 서울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서울에 오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가 가장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양국은 무엇보다 대북 인식이 이토록 다른 이유를 규명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김정일 답방의 불씨를 살리고, 금강산관광사업의 명맥을 잇겠다는 생각에 몰입한 나머지 ‘검은 북한’을 “하얗다”고 오판하고 매달리는 것이라면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북한에 대한 한미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른데도 미사여구를 동원해 비슷하게 보이도록 봉합하려다가는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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