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대중심리가 주가 좌우…공감대 바탕 테마주등 형성

  • 입력 2002년 1월 30일 17시 26분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球根) 하나가 요즘 돈으로 1000만원 가량에 팔리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튤립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군중 심리가 튤립 가격을 급등시켰고 튤립뿌리를 사기 위해 보석과 집을 저당 잡히는 사람이 속출했다. 경제사에서 ‘구근 투기’로 기록된 유명한 사건이다.이런 ‘튤립 열풍’과 마찬가지로 주식시장에서 투자자의 심리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

‘고도의 심리 게임’이라고도 불리는 주식시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심리학 소재는 매물대다. 매물대란 투자자가 과거에 그 주식을 사 둔 주가 수준.

예를 들어 A종목의 주식이 1만원일 때 이 주식을 산 투자자에게는 매물대가 1만원이다.

매물대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투자자의 ‘본전 의식’ 때문. 보통 투자자들은 자신이 산 종목의 주가가 하락했을 때 ‘본전만 회복하면 팔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가가 하락했다가 본전이 되면 주식을 파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

특정 주가 수준에서 과거에 주식을 사 둔 사람이 많을 경우 그 주가를 매물벽이라고 부른다. 매물벽에서는 주식을 팔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주가가 더 오르기 어렵다.

최근 “종합주가지수 780∼800은 2년째 주식을 묻어둔 투자자들이 많은 두터운 매물벽이기 때문에 쉽게 돌파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그래프나 차트가 만들어내는 여러 이론도 심리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차트의 각종 이론은 ‘과거 투자자들이 이렇게 행동했으니 지금도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는 일종의 경험칙적인 추정. 여기에 ‘다른 투자자도 차트를 보고 나처럼 행동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군중심리가 가세하면 이론은 현실과 더 잘 맞아떨어진다.

‘적삼병(주가 그래프에서 양봉이 3개 연속으로 나타나는 것)이 나타나면 대세 상승의 신호’라는 사케다의 이론이 잘 들어맞는 것은 그 이론의 훌륭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자자들의 군중심리 때문이기도 하다.

‘적삼병이 나타났으니 사람들이 주식을 사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주가가 오를 테니 나도 사야 한다’는 심리가 주가를 더 올리는 것이다.

테마주에도 심리적인 요소가 많다. 1988년 한국 증시에는 ‘만리장성의 외벽수리 공사를 한국 기업이 맡았다’는 헛소문이 나돌았고 이어 ‘인부들 간식으로 호빵이 제공되고, 호빵 먹다 체하면 소화제로 훼스탈이 제공될 것이기 때문에 삼립식품과 한독약품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만리장성 테마’가 형성된 적이 있었다.

실제 투자자들도 이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주가가 오르니 따라 사는 사람이 늘었고 이 두 종목의 주가는 잠시나마 상승세를 탔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