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장단에 또 휘둘리나

  • 입력 2002년 1월 22일 18시 48분


정부가 조만간 국민 세금으로 금강산관광사업의 명맥을 잇겠다는 지원 방침을 내놓을 모양이다. 북측은 작년 6월 현대측과 합의한 육로관광과 관광특구 지정 등 금강산관광 활성화의 전제가 되는 조치 중 어느 한 가지도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을 저버리면서 이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이며 대북 퍼주기의 또 다른 사례가 될 뿐이다.

이번에는 특히 북측이 4월 말부터 두 달간 열리는 아리랑축전에 대비해 한시적인 육로개방을 제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로써 북측이 전에 없이 육로 개방까지 제의했으니 남측 정부도 위기에 빠진 금강산관광사업을 지원해 주는 게 옳지 않으냐는 식의 논리가 나올 법하다. 정부도 어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일차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부는 금강산관광사업과 북측의 육로개방 조치는 엄연히 별개 사안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육로개방을 빌미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 가는 금강산관광사업에 국민 세금을 무한정 쏟아 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정부가 또 다시 북측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북측이 왜 갑작스레 육로개방을 제의하고 나섰는지를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측이 바라는 목적은 역시 외화획득 및 체제선전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리랑축전은 본질적으로 김일성 주석 출생 90주년, 인민군 창군 70주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출생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정치선전의 장이다. 또 육로개방도 그 기간에 국한된 한시적인 조치여서 이로 인한 남북관계의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신호부터 보낸 것은 잘못이다. 또 육로개방 제의가 금강산관광사업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현대측 인사를 통해 전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북측 당국의 공식적인 제안을 받아 충분히 검토하고 여론을 모은 뒤에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본다.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중 하나는 북측에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북측 고집에 밀려 스스로 내세웠던 정경분리 원칙을 제풀에 포기하거나 북측의 작은 손짓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자세로는 남북관계의 진정한 화해협력과 발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권 말기에 들어선 정부는 이제라도 북측에 대해 원칙 있는 자세로 대화를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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