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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18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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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는 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우선 교도소에 갇혀 있는 세 명의 전직 법조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잡지 광고를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이들과는 무관하게 워싱턴의 정치인 아론 레이크가 CIA 국장의 권유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이 두 사건의 줄기를, 존 그리샴은 마치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인 양 엮어서 빠른 속도로 전개시켜 나간다.
무엇보다 빠르게 읽히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처럼 빠른 속도감은 먼저 작가의 능란한 솜씨 덕분이고, 다음으로는 할리우드의 영화적 상상력 덕분일 것이다. “내 글은 질 높은 전문적 오락”이라고 그 스스로 공언하듯이, 존 그리샴은 복잡하고도 규모가 큰 영화적 이야기를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이끌어나갈 줄 아는 능숙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펠리칸 브리프’ 등을 통해 익히 보여준 바대로, 복잡한 법정 소송과 정치 이야기를 그는 누구보다도 재치 있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엮어낼 줄 안다.
그러나 교도소 안에서 벌이는 사기행각이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정치싸움이 낯설기는커녕 빠르게 이해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할리우드의 영화적 스케일과 상상력이 내게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감옥 부분은 ‘쇼생크 탈출’을 코믹하게 변주한 듯싶고, 대통령 선거 이야기는 ‘밥 로버츠’와 ‘대통령의 음모’를 스릴 있게 조합시킨 듯싶었다.

나는 심지어, 이 소설을 영화로 찍는다면 보다 생략해야 할 부분과 강조할 부분을 혼자 속으로 상상하면서, 각각의 등장인물에 대해 적당한 배우를 찾아보느라 키아누 리브스, 팀 로빈슨, 톰 행크스, 휴 그랜트 등등의 유력한 할리우드 스타들을 열심히 물색해보았을 정도다. 이것은,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소설을 읽는 색다른 재미였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법조인들은 탈출에 성공하고, 레이크 역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러나 레이크의 대통령 입후보는 일종의 사기에 불과하다. 그가 유력한 후보 물망에 오른 이유는, 신냉전 논리를 위해 테러사건을 알고도 눈감아버린 CIA국장의 음모 덕분인 것이다. 작가는 두 이야기 줄기를 통해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일개 법조인의 사기행각만도 못함을 보여줌으로써 권력의 추악한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존 그리샴의 이러한 작가적 솜씨에도 불구하고, 냉전논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작금 미국의 패권주의를 생각할 때, 미국적 상상력의 소설을 읽는 일은 씁쓸하기만 하다. 특히 문맥이야 어떻든 우리의 진실과는 무관하게 ‘한국 정부만큼 미국의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을 환영할 만한 국가도 없었다’는 식의 구절을 접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주체성 없이 미국 문화를 대하는 한국인이 느껴야 할 비애다. 신현철 옮김, 원제 ‘The Brethren’(2000).
이 만 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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