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박재창/월드컵 ‘경제’로만 보지말라

  • 입력 2002년 1월 15일 18시 06분


김대중 대통령은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올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문제를 조금은 이례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거듭 강조해서 말했다. 월드컵 개최는 1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사로 1조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한다고 했다.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다시없는 국운 융성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흔하지 않은 기회이니만큼 그런 기대를 걸어 볼 만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월드컵 개최를 단순히 경제적 이익을 내기 위한 스포츠 행사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결코 국운 융성의 전기로까지 승화되기는 어렵다. 경기가 안전하게 치러진다거나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내서 삶의 일상에 지쳐 있는 국민에게 생기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과성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돈 버는 장삿속 아니다▼

월드컵 개최가 국운 융성의 전기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월드컵 개최를 국가발전론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시력과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이 나라의 발전을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채택해 온 발전전략은 국가 개입주의였다. 그러나 그 과실은 사회적 형평성의 상실과 부의 편재라는 역효과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오늘날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을 당연시하고 시장주의적 메커니즘의 유용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거듭하면서 제3세계의 발전도상국가들이 염원해 온 과제 중의 하나는 어떻게 하면 이들 상호 대립적 관계에 있는 국가 경영전략을 각각의 본질과 성과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월드컵의 개최는 바로 이런 대립적 국가발전전략을 공존과 화해의 장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세기적 스포츠 행사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한시적으로 행정권의 폭과 비중을 강화하되 행사 후에는 시장주의의 원리와 정신으로 곧바로 복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두 개의 대립적 국가발전전략을 잠시 교행시키는 셈이 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나태와 관성의 안일 속에 빠져 있다가도 손님의 방문이 예정돼 있거나 가정의 중요행사가 있을 경우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집안 청소에 나서거나 그 과정에서 가장의 언권을 잠시 강화해 주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국가주의와 시장주의를 섞어 제3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교행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개별 전략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서로의 전략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계기를 가져보자는 것이다.

이는 마치 대나무가 자라다가 한 마디의 성숙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때 결절을 짓고 다시 성장해 나가는 이치와 같다. 그러니까 월드컵 개최가 국운 융성의 전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 온 현재의 질서나 관행을 일제히 점검하고 새롭게 정비하는 일종의 사회적 결절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일상의 나태를 털고 새로운 기개와 결의로 월드컵 개최라는 국가적 과제에 도전하는 긴장감과 성실성을 낳을 수 있어야 하고, 일단 형성된 이런 정신과 태도를 일상화함으로써 사회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성과를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 전반에 걸친 재정비 작업과 자기 성찰, 그리고 내일을 위한 비전과 대안의 모색이 조장되고 지원되어야 한다. 부지런한 꿀벌처럼 슬퍼할 겨를 없이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이 덕목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잠시 짬을 내어 현재의 좌표를 점검하고 미래의 변화방향을 점검해 볼 줄 알아야 하며 그 전기로 월드컵 개최가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비전 점검해야▼

그러나 과연 현정부가 이런 기대값과 목적의식 아래에서 월드컵 준비에 임해 왔는지를 묻고 싶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월드컵이 그저 돈이나 벌고 장사나 좀더 잘 해보자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어째서 온 국민이 열망하고 동참하겠는가. 1조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 될지 불분명하다면 무엇 때문에 모두가 열광하고 기대에 들떠 월드컵을 기다리겠는가.

월드컵 유치가 국운 융성의 최소조건이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국운 융성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마음속에 다져 보아야겠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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