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뛰는 사람들]대안학교생 이경훈군

  • 입력 2002년 1월 3일 17시 58분


“대안학교에 와서야 마음을 다잡았어요. 새해에는 그동안 철없는 방황으로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찾아볼래요.”

인문계 고교와 실업고 등을 전전하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한 이경훈(李京勳·17)군의 새해 소망은 미래에 대한 꿈을 되찾는 것이다.

이군은 대안학교에서 학과수업을 비롯해 드럼 치기, 요리, 바둑 등 다양한 특별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정을 못 붙였던 학교 생활에 다시 적응하기 시작했다. 올해 고3 수험생이 되는 이군은 환경기사자격증을 따 내년엔 대학에도 진학할 계획을 세웠다.

이군은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 잘하는 모범학생이었다. 경찰대에 진학하려고 인문계 고교에 입학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는 ‘폭주족’ 생활에 빠지면서 학교를 등지게 됐다.

이군은 심야에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도심을 8시간씩 질주한 뒤 매연으로 새까맣게 변한 얼굴로 새벽에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가출까지 하고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고교 2학년 1학기를 마쳤지만 학교를 결석한 날이 6개월이나 됐다. 경찰관이 돼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꿈은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심야에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가기도 했다.

퇴학 위기에 놓인 이군은 지난해 5월 집 근처 공업계 고교 환경과로 전학했지만 이곳에서도 교사에게 대들었다가 12월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저 때문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혼자서 흐느끼고 있는 것을 몰래 봤어요.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당하고도 당당하셨던 분이었는데….”

1998년 은행에서 명퇴를 당한 뒤에도 꿋꿋이 새 삶을 찾으려던 아버지의 눈물이 이군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이군은 퇴학 처분을 받자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해보겠다는 각오로 대안학교행을 자청했다.

“학교에 재미를 붙이면서 ‘내가 왜 그랬나’ 하는 반성을 자주 해요. 오전 8시에 집을 나서 학교에 가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이군은 요즘 오토바이 대신 대안학교에서 배운 드럼에 맛을 들였다. 드럼을 치면 오토바이를 탈 때처럼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는 시간보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손을 놨던 책도 다시 잡았다. 겨울방학 동안에는 대안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학원에 등록해 대학수학능력시험도 준비할 계획이다.

이군은 “철없는 방황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더니 부모님 잔소리까지 줄었다”며 “‘학교를 포기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큰 교훈이 됐다”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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