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햇볕정책, 허황한 꿈 버려라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7시 05분


올해 남북한관계는 어떻게 될까. 희망은 버릴 수 없다는 미련과, 그리고 그 희망의 끄나풀은 어떻게 하든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제대로 풀릴까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한다.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이 대충 마무리되면 워싱턴과 평양간에 봄기운이 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남북한 관계도 자연히 풀리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북한의 국내사정도 남북한관계의 물꼬를 트게 할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북한은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0회 생일과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을 계기로 대대적인 내부결속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 내부결속을 도모하자면 무엇보다 경제적 여력이 필요하나 북한의 경제전망은 올해가 더 어둡다는 게 다수의 견해다. 남한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선정국 악용 가능성▼

반대로 북-미 관계에 아무리 봄기운이 돈다해도 양국간에 가로놓인 ‘얼음’은 녹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미 북한에 요구해 놓은 재래식무기나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해결책, 그리고 테러문제에 대한 이견이 오히려 양국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남북한 관계도 북한이 근본적인 제도개선차원보다는 일시적인 경제적 실리만 취하려 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신뢰를 쌓기는커녕 국내외적인 갈등의 싹만 한층 더 키울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북한은 남한의 대선 정국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곧 퇴장할 김대중 정권과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며 한발 물러서 대세를 관망하는 척하다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남 정책을 내놓고 그 제안에 따른 이(利)를 취하려 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올해 남북한관계는 꼭 한해 전 이맘 때 가졌던 기대와 희망에 비해 그렇게 낙관적이지 못하다. 불투명한 구석이 너무 많다.

작년의 경우 정부는 지나친 낙관론에 들떠 남북한 관계를 크게 잘못 짚었다. 3월 5차장관급회담이 일정을 눈앞에 두고 무산될 때만 해도 김 국방위원장은 여전히 서울에 올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다. 경의선 철도가 곧 연결되고 금강산 육로관광도 이뤄질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 허황한 꿈에서 조금이나마 눈을 뜬 것은 작년 10월 북한이 느닷없이 테러 때문에 발동한 남한의 비상경계조치를 문제삼고 금강산회담을 고집할 때부터였다. 정부는 그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모양이다. 김 대통령이 북한의 태도에 실망했다며 김 위원장의 답방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은 작년 11월 말쯤이었다.

북한측의 책임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산가족 상봉과 장관급회담의 약속을 하루아침에 깬 것도 그들이고 엉뚱한 요구로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상하게 한 것도 그들이다.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북한은 왜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운 심정뿐이다.

그러나 사리 분별력이 없기는 남한도 마찬가지였다. 햇볕정책에 고지식할 정도로 집착했다. 순수한 민족적 정서와 감정으로 베풀고 포용만 하면 아무리 반세기 동안 응어리진 문제들이라도 저절로 풀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젖어 있었다. 그런 기대가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답방을 꼭 실현시키겠다는 김 대통령의 집념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 결과 엄청난 시행착오와 국론분열만 불러일으킨 것이다.

▼남북관계 현실 직시를▼

이제 새해가 됐다. 북한은 올해도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기대와 실망을 주며 남북한 관계를 이끌어 가려 할 것이다. 아직 임기가 1년이 남았으니 그동안만이라도 남북한 관계에 무슨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는 없을까 하고 초조해하다 보면 북한이 하자는 대로 또 끌려가는 상황이 된다.

북한에 등을 돌려 담을 쌓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햇볕정책에 스며 있는 허황한 꿈과 집착을 과감히 탈색하고 남북한 관계의 현실을 보다 냉철히 점검해 보자는 얘기다. 그리고 올해가, 햇볕정책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지혜를 모으고 그 정책의 공과를 다음 정권에 효율적으로 넘기는 작업을 해야 할 시기라는 뜻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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