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출국의혹, 정권차원서 밝혀라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8시 07분


‘진승현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김재환(金在桓) 전 MCI코리아 회장이 검찰의 출국금지 조처 직전인 지난달 14일에 미국으로 달아난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가 조사받지 않으면 우선 민주당 김방림(金芳林) 의원이 받았다는 5000만원 수수 문제도, 국가정보원 김은성(金銀星) 전 차장이나 정성홍(丁聖弘) 전 경제과장 등의 수뢰 처벌도 벽에 부닥치게 된다. 한마디로 재수사에 들어간 진 게이트는 정계나 관계를 상대로 한 핵심 로비스트인 김씨 없이는 한 발짝도 풀어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가 입을 열어야만 정치권 로비나 총선자금 살포 의혹이 밝혀지게 되어 있었다.

검찰은 뒤늦게 외교부 등에 여권과 비자의 연장금지 조처를 취하고, 인터폴에 김씨를 수배하는 한편 한미 범죄인인도협약에 따라 신병 인도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민은 농락당하고 기만당한 느낌이다. 검찰이 수사에 결정적인 인물의 도피성 출국을 막지도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는 말인가. 그리고 출금 조처 전에 빠져나간 사실조차 달포 가까이 모르고 국내에서만 찾아 헤매고 다닐 정도의 시스템이라는 말인가. 한마디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오죽하면 여당의 대변인조차도 ‘뭔가 석연치 않다’고 말할까. 검찰을 향해 여당 대변인이 “김씨의 도피성 출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만의 하나라도 누군가의 비호는 없었는지 국민이 납득하도록 설명하라”고 촉구했다. 굳이 야당 대변인이 말한 ‘몸통 비호를 위한 꼬리 잘라내기’ 같은 표현은 인용할 필요조차 없다. ‘정현준 게이트’에서는 동방금고 유모 사장과 신양팩토링의 오모 사장이 출금 직전에 미국으로 도피했고, ‘이용호 게이트’에서는 정관계 로비책임자라는 윤모씨가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하필 핵심 인물들이 결정적인 시기마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정권 차원에서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항간의 의혹이나 비난처럼 고의적인 은폐용 빼돌리기가 아니라면 ‘석연해지고 납득되도록 설명’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부정 비리가 나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부정 비리의 은폐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씨의 도피가 확인된 다음날 김 의원은 당당하게 검찰에 나와 조사받고 귀가했다. 국민은 속고 있다는 분노로 떨고 있다. 김씨를 다시 데려와서 진승현 게이트를 소상히 밝히지 않으면 ‘현정권의 조직적인 은폐’라고 손가락질해도 할말 없게 되어 버렸다. 정권의 도덕성이 걸린 심각한 문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