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12월 21일 18시 2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박 전 의원의 ‘해명’은 사실 부인 김씨의 폭로를 확인해 준 셈이다. 박 전 의원은 “천장까지 차곡차곡 쌓인 사과상자 속의 돈 냄새 때문에 어지러워서 잠을 못 잤다”는 식의 부인 발언이 과장됐다는 것인데 이번 파문의 핵심이 표현의 과장 여부에 있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일이다.
파문의 핵심은 8억∼9억원이란 거액이 재벌기업으로부터 당시 야당 총재에게 전달된 사실이 전달자에 의해 폭로된 것이다. 받은 측이 요구를 했든 안 했든 엄청난 액수의 돈이 사과상자에 담겨 한밤중에 세 차례씩이나 전달됐고, 그 일이 13년이나 지나 뒤늦게 폭로됐다면 이제는 받은 측이 그 전후 사정을 해명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그러나 김 의원은 “(김씨가) 몸이 안 좋으신 모양이더라. 여자 분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라며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언급조차 피하고 있다.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과거 ‘검은 정치자금’의 썩은 풍토와 그릇된 관행의 모든 책임을 떠맡으라는 것은 아니다. 오랜 정경유착 구도 하에서 과거 어느 정권, 여야(與野) 정치권이든 ‘검은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다 그랬으니 없었던 일로 치자는 식은 용납될 수 없다. 하물며 대통령의 장남이자 개혁을 앞세운 이 정권의 핵심인물이라면 과거의 일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의 양해와 용서를 구하는 것이 떳떳한 자세다. 어물어물 덮어버리려 해서야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낼 수 없다.
더구나 최근 잇따른 권력 내부의 부패 비리 혐의로 현정권의 도덕성은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는 김씨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