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해상근무 21년… “뱃사람이라 불러주오”

  • 입력 2001년 12월 21일 01시 17분


“경찰관이 아니라 뱃사람으로 불러주는 게 듣기 편해요.”

동트기 2∼3시간 전이면 인천해양경찰서 소속의 경비정 한 척이 어김없이 인천 중구 항동 해경부두를 나선다. 경찰관과 전경대원 등 8명이 탑승한 초고속 ‘형사기동 경비정’인 25t급 ‘P108정’의 지휘자 안재석(安在錫·50·사진) 경위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찰 입문 이후 육상근무 1년을 제외한 21년을 줄곧 선상에서 생활해왔다. 96년 9월부터는 5년여동안 이 형사기동정을 타고 인천 앞바다를 샅샅이 누비고 있다. ‘인천 앞바다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그는 ‘해경의 날’인 23일에도 겨울 바다를 헤치고 있을 것이다.

인천해경에 한 척 밖에 없는 이 형사기동정은 밀수, 어구 절도, 불법 조업 등의 단속을 위해 하루 230∼240㎞ 가량 바다를 돌고 있다. 물을 뒤로 내뿜는 힘으로 추진되는 제트워터식인 이 배는 시속 30노트의 빠른 속도로 평택만 덕적군도 등을 비롯 인천항에서 3∼4시간 거리인 연평도까지 돌아다닌다.

안 경위는 “인천 연근해를 10곳의 우범해역, 5곳의 취약해역 등으로 나눠 순찰활동을 하고 있다”며 “일몰과 일출 2시간 전후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이 시간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정보를 미리 입수해 소래포구 화도진 등 항포구에서 수시간씩 잠복 근무를 펼치는 때도 많다. 형사기동정이 한 척만 더 있어도 교대근무를 할 수 있을 텐테 그렇지 못해 거의 매일 새벽에 집에서 나와 저녁 늦게까지 근무해야 한다.

형사기동정 경찰관들은 하루 세끼를 모두 배 안에서 해결한다. 그래서 각자 집에서 김장김치나 마른 반찬 등을 가져온다. 가끔 입맛을 돋구기 위해 취사를 도와주는 전경대원에게 ‘오늘의 요리’를 부탁하기도 한다.

이들은 형사사범 단속 외에 구난·구조활동에도 눈부신 공을 세우고 있다. 최근 승봉도 인근 해상에서 바다낚시를 하던 배가 바닥이 갈라지면서 침몰 위기에 놓였으나 28명의 목숨을 모두 구해낸 것도 이들이었다. 또 어로작업을 하다 팔이 어구 줄에 감겨 출혈이 심해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선원을 인하대병원으로 옮겨 생명을 건진 일도 있다.

“배에서만 지내다 보니 바깥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고 가족을 챙겨주지 못해 안타깝지요. 그렇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위급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 듣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시름이 사라집니다.”

해 저문 인천항을 떠나는 8인의 형사기동정 경찰관 뒷모습에서는 넉넉한 인심의 어민 분위기가 풍겨났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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