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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12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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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의 특권’은 농구보다 축구가 더하지 싶다. 농구는 코트가 좁아 경기 중에도 감독의 지시가 통하고, 안되겠다 싶으면 작전타임을 불러 혼찌검을 낼 수도 있지만 축구는 다르다. 경기장이 워낙 넓어 감독이 소리질러봤자 잘 전달되지 않는 데다 작전시간도 따로 없다. 그러니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고참이 ‘왕’이다. 신참으로선 괜히 고참 비위 거슬렀다가 찍히면 두고두고 고생바가지니 웬만하면 볼을 양보하는 게 상책이라고 여길 법도 하다.
▷“경기장에서 선후배는 없다”는 월드컵축구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질타는 이래서 나왔을 게다. 유럽 선수들은 몸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플레이를 한다. 선배든 후배든 서로 목청을 돋워 위치도 바로잡아주고 순간적으로 작전을 짜 움직이는 게 선진 축구다. 그렇게 11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도 모자라는 판에 고참은 폼잡고 신참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치만 보는 ‘모래알 축구’가 그의 눈에 들었을 리 만무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경기 중에 서로 말 좀 하라”는 주문까지 했을까.
▷후배가 선배 어려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야 축구의 생명인 조직력이 살아날 리 없다. 내년 월드컵에서 싸워야 할 포르투갈 폴란드 등은 모두 세계 정상급 팀들이다. 가뜩이나 유럽 축구에 약한 우리에게 그들의 힘과 기술을 꺾을 무기는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뿐이다. 선수들끼리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조직력을 키우는 전제조건이 아닌가. 최근 평가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시끄러워졌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도 ‘입 열린 축구’를 하는가 싶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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