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2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은행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신 있는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결정을 미루고 있다. 특히 연말을 앞두고 기업대출 승인이 지연되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의 처리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간파한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은행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한 기업대출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
▽워크아웃 기업처리 지연〓A은행은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B사에 대한 수천억원의 출자전환을 앞두고 걱정이 앞선다. 공적자금 투입의 주요 원인을 제공했던 그룹의 계열사여서 다른 금융기관이 제대로 호응해줄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A은행 실무자는 “정부는 고의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는 이제까지 늘 반복돼온 이야기”라며 “실수로 미흡하게 처리된 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업체인 S사를 맡고 있는 K은행은 신규자금지원 안건이 통과될지 걱정스럽다. 한 실무자는 “기존 대출금에 대한 채무조정은 그나마 덜하지만 신규자금지원은 ‘사인’한 사람이 나중에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감사원 발표 이후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부 시중은행들도 복지부동하고 있다”며 “워크아웃 기업의 마무리가 한창 진행중인데 다소 지연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기업대출은 일단 정지〓정부 관계자는 “연말을 앞두고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꺼리고 있어 걱정”이라며 “은행들에 기업대출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지만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워크아웃 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검찰수사의 대상이 되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D은행 관계자는 “대출담당자가 신용도가 높은 기업을 발굴해 수익을 내다가도 몇 년 후 그 기업이 부도가 나면 소급해서 문책을 당한다”며 “신규대출은 가급적 이런저런 이유를 대 승인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은행의 A기업 여신담당자도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오늘 결정할 일을 내일로, 내가 결정할 일을 후임자에게 미루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두영·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