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의 ‘14년 쉬쉬’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19분


국가정보원이 아내인 수지 김(金)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윤태식씨를 14년간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은 검찰이 수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그 같은 의혹은 거의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단계다. 정말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경찰측에 따르면 국정원측은 작년 2월 경찰청 외사과에서 윤씨를 소환해 조사하자 수사기록 일체를 넘길 것을 요청하면서 수사를 중단시켰다. 국정원측도 자체 감찰을 통해 경찰에 대한 수사 중단 ‘외압’은 엄익준 전 제2차장이 주도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는 등 경찰측 주장을 사실상 시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 쪽에서는 “국정원이 수지 김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왜곡하고 은폐했기 때문에 사실이 탄로날까 봐 윤씨를 계속 관리해 온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에다 국정원측이 그동안 윤씨의 사업을 뒤에서 돌봐주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원의 일부인사들이 그처럼 윤씨와 ‘한패’처럼 행동했다면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단순한 살인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그것이 탄로날까 봐 살인 용의자의 뒤를 14년간이나 봐주었다면 누가 그런 국정원을 신뢰하겠는가. 군사독재정권의 하수인역을 해 온 권력기관의 추잡한 과거 행적만 다시 떠오르게 할 뿐이다.

검찰은 국정원측 전현직 인사 4명을 금명간 소환해 조사할 것이라고 한다. 국정원측이 수지 김 사건으로 인한 불명예를 씻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건 전모를 확연히 밝히든지 아니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길밖에 없다.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측이 쉬쉬한 사실이 더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치욕이 없을 것이다.

국정원측이 지난 14년 동안 윤씨의 뒤를 봐주었다는 놀라운 얘기가 다시 나옴에 따라 세간의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당초 수지 김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조작한 경위는 어떻게 된 것이며 누가 그런 지시를 했는가. 윤씨의 사업과 관련된 국정원측의 검은 커넥션은 없는가. 작년 2월 경찰의 소환조사를 중단토록 결정하고 지시한 최고위 인사는 이미 고인이 된 엄 전 제2차장이 분명한가. 이런 모든 것이 풀어야 할 의혹들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조금이라도 국정원의 눈치를 보게 되면 당장 “서로 짜맞추기식 수사를 한다”는 오해를 사게 될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만이라도 한점 의혹 없는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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