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영준/‘公자금 도둑’ 그냥둘 수 없다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7시 40분


감사원의 공적자금 특별감사 결과,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은 부실기업의 악덕 대주주들이 4억 여 달러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4조원대의 재산을 은닉·도피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부도난 기업의 재산을 신속히 처리해 채권자에게 돌려준 뒤 해산하는 것이 유일한 임무인 파산재단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이르렀다.

▼책임자 은닉재산 환수해야▼

또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허위 분식회계 수법으로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 영업을 재개한 후 2조원대의 추가손실을 내고 퇴출된 일부 종금사들의 사례는 최악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다. 이들은 흡사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의 배를 열고 암세포를 제거하는 대신 멀쩡한 장기를 적출해 내다 팔아 환자를 죽게 한 파렴치범들의 소행과 다를 바 없다.

이미 감사원 스스로가 이번에 발견된 결과가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판단하고 추가감사를 실시키로 했다고 한다. 추가 감사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포함한 불법·탈법 유형과 관리부실의 주체를 발본색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혈세로 메워진 공적자금의 회수를 위해 악덕기업주와 부실 책임자들의 은닉재산을 철저히 밝혀내 끝까지 환수해야 할 것이다.

한편 차제에 우리는 공적자금이 공짜자금처럼 펑펑 쓰여질 수 있게 된 사태의 본질이 일부 범죄자들의 범죄행각에 연유하는 행태적 문제인지, 아니면 총체적 관리시스템의 부실로 인한 구조적 문제인지를 진단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법적·제도적 대응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를 맞았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금융중개 기능의 마비가 초래할 국민경제의 파국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IMF사태 하에서 대외신인도의 하락으로 다른 금융기관, 기업, 외국자본 등으로부터의 자금조달이 사실상 곤란하게 되어 공적자금의 지원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의 긍정적인 효과가 정보 비공개 및 집행과정의 불투명성, 비 경제논리의 개입 등으로 반감되고, 오히려 관리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켰다. 또 금융기관들의 경영혁신에 반대 요인으로 작용하는 최악의 사태도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방대한 공적자금의 투입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 것은 공적자금의 조성과 운영 및 결과를 관리 감독하는 책임있고 정치 중립적인 기구가 없었다는데 일단의 원인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관련정책은 청와대·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가 담당하고, 실무는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 및 자산관리공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모든 권한이 정책부처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인 실무집행기관은 형식적 사후관리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정책과 집행의 혼선이 따르고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하게 되어, 상황에 따라 바뀌는 원칙과 무원칙적인 감독 행태가 공적자금의 투입효과를 오히려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정책당국의 땜질식 처방은 새로운 악수를 연발해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의 인사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공적자금 활용을 통한 자리보전에만 더 신경을 쓰는 새로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리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부실한 관리감독은 결국 악덕 기업주들의 불법·탈법적 재산도피의 구멍을 만들어 주거나, 파산재단의 도산 기업 간 빼먹기인 하이에나식 도덕적 해이를 창궐케 한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따라서 이번에 구체적으로 밝혀진 공적자금관리의 부실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 관리주체를 현행의 형식적인 체제에서 실질적인 체제로 전환시켜 책임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감시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관치의 심화로 인해 금융기관 경영과 시장의 자율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치 금융의 구조적인 핵을 제거해야 한다.

또한 부실기업들의 도덕적 해이와 연쇄적 부패고리를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투명한 운영을 위한 견제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금융관련 범죄자의 경우 금융시장에서 영구 퇴출시키는 영구퇴출제의 도입이나,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금융 민사적 사건의 경우 손해 액의 수십 내지 수백 배의 경제적 처벌을 요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 등이 필요하다.

권영준(경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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