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AIG의 끝없는 생떼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08분


‘협상론’을 쓴 퓨리트는 “협상이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개체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정의를 옆에 놓고 현대증권과 미국 AIG컨소시엄의 외자유치협상을 지켜보노라면 이를 과연 ‘협상’이라 부를 수 있을지 혼란스럽다. ‘공동으로 내리는 의사결정’ 과정이 도무지 관찰되지 않는 것이다.

AIG는 22일 또다시 추가 요구를 해왔다. 현대증권에 4000억원을 출자하면서 받게 될 우선주의 배당 기준을 액면가(5000원)에서 발행가(7000원)로 높여달라는 등 5가지 수정안을 내놓은 것.

양해각서(MOU)까지 교환한 뒤인 8월 “신주 발행가를 낮추자”고 억지를 부린 데 이어 두 번째다.

현대증권의 협상팀은 “우리를 깔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느냐”며 흥분했다. 차라리 ‘미국 테러로 인해 손실이 났기 때문에 투자수익률을 높게 잡을 수밖에 없다’고 AIG측이 설명한다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때마다AIG는 “예전부터 주장해 오던 사안일 뿐”이라고 우기고 있다.

AIG의 요구 사항 중 상당 부분은 주주총회를 열어 회사의 정관을 뜯어고쳐야 할 사안들.아무리 봐도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현대증권은 8월 당시 강력히 반발했지만 끝내 AIG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번에도 저항의 시간이 길지 않아 보인다. 3일 뒤인 25일 금융감독위원회가 “협상은 계속 진행중”이라고 밝힌 것이다. 업계에서는 “매각 성사에 목을 매는 금감위가 현대증권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같은 불평등한 협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들이다.

1.돈을 가진 자(AIG)는 강자이며 부실기업은 약자다.

2.부실기업은 ‘공동으로 내리는 의사결정’ 과정에 제 몫의 발언권을 가지고 참여할 수 없다.

3.이런 굴욕을 또다시 겪지 않으려면 실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박현진<금융부>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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