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혁백/선거제도 확 바꾸자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08분


헌법재판소는 25일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인수 상하한선 규정(상한 35만명, 하한 9만명, 최대 편차 3.88 대 1)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04년 총선 이전에 3 대 1로 인구편차 기준을 재조정하라고 명령했으며 장기적으로는 인구편차 기준이 2 대 1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헌재결정 전폭적 수용 필요▼

이번 결정은 1995년에 내린 결정의 인구편차 기준인 4 대 1보다 더 강화된 것으로 국민주권의 행사인 투표가치등가성원칙의 실현을 위한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헌재의 결정은 7월 19일 국회의원 비례대표 투표방식에 대한 위헌 결정 및 정당의 낙점식 비례대표공천방식에 대한 위헌가능성 결정과 더불어 선거제도의 민주화를 위한 기념비적 업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구 획정은 농촌지역의 과잉대표와 도시지역의 과소대표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개발독재시대의 집권세력은 정권에 대한 불만의 근거지인 도시지역의 선거구 수를 가급적 줄이고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농촌지역의 선거구 수를 늘려 국회 내에서 안정적인 다수를 확보하려 했다. 따라서 야당이 전체 득표수에서 여당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여전히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도시와 농촌간 선거구 크기의 편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지역을 분할독점하고 있던 정치지도자들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지역적인 대표성을 독점하고 소규모 농촌지역의 선거구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의원 수를 최대한 확보하려 했다. 소선거구제, 농촌지역의 과잉대표, 낙점식 전국구 공천제야말로 한국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지역주의와 보스주의를 낳고 유지시켜온 제도적 기반이었던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정치권은 선거구 재획정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 헌법적 제약을 안게 되었다. 정치권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농촌지역의 작은 선거구를 통합하고 도시지역의 큰 선거구를 분할해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3 대 1로 조정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미시적인 선거구 재획정 방식은 여야를 막론하고 독립선거구를 상실하게 될 농촌지역의 반발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 원칙이 손상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소선거구제도를 유지하면서 헌재의 결정에 따른 선거구 재획정을 시도할 경우 도시 대 농촌, 중앙 대 지방이라는 새로운 균열구조를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두 차례에 걸친 헌재의 결정을 수용할 수 있는 선거제도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7월 19일 헌재의 결정은 유권자의 ‘직접’ 선거권을 침해하는 현행 비례대표제를 개혁하라는 것이었고 10월 25일의 선거구 재획정 명령은 유권자에게 보다 ‘평등한’ 선거권을 실현해 주라는 것이었다.

▼1인2표 비례대표제 도입을▼

이 두 가지 헌재의 결정사항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중대선거구제와 1인2표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는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 농촌지역의 선거구를 통합할 경우 발생할 소지역주의의 등장과 도시와 농촌간의 갈등을 예방하면서 표의 등가성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1인2표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1인1표제 하에서 후보자를 지지하나 그가 속한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경우에도 정당지지표로 간주되어 비례대표 의석 계산에 포함됨으로써 발생하는 유권자의 선택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는 또 지역구 선거가 충족시키지 못하는 직능 대표의 원내 진출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소수파 정치세력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입도 용이하게 한다. 또 지역정당에 적대적인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비례대표 리스트 작성방식의 민주화가 헌재의 결정대로 이루어질 경우 보스주의의 폐해를 시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혁백(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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