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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4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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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24일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장 진입로를 다듬고, 조경 작업을 벌이느라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공정률 98%. 개장을 불과 3주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그러나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월드컵의 함성과 열기는 벌써 스탠드를 휘감아 도는 듯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당당한 모습은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을 빠져 나오면서부터 눈길을 끈다. 경기장 진입로까지 바로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점점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경기장의 흰색 지붕은 금방이라도 바람을 담고 한강을 가를 것 같다. 경기장 지붕을 마포 나루터를 드나들던 ‘황포돛배’와 ‘방패연’ 모양을 따 설계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과 3년전까지만해도 쓰레기 더미였던 이 땅은 세계인이 벌일 축제의 마당으로 새로 태어났다.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이어서 ‘오리섬’이라고도 불리던 난지도는 그 이름처럼 푸른 풀밭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원래 모습을 잃었던 이 땅이 비로소 예전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되찾은 셈이다.
입구를 지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 들뜨지 않은 모양새가 오히려 반갑다. 수원 울산 등의 경기장과 달리 스탠드는 원색을 쓰지 않았다. 좌석은 전체적으로 흐린 회색. 회색은 회색이어도 칙칙하고 가라앉은 색깔이 아니라 안정적이면서도 희망어린 느낌을 주는 밝은 회색빛이다. 막 깔아놓은 진초록의 잔디와 어울리는 품이 여간 고상한게 아니다. ‘캔터키 블루 그래스’라는 잔디는 내구성이 강한데다 한겨울에도 푸른 빛이 유지되는 품종이어서 축구 경기용으로 알맞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관람석 수는 모두 6만4677석. 동양 최대 규모의 축구 전용구장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지만 사실 직접 보면 그 규모보다는 어딘지 단아해보이는 디자인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경기장에는 가로 약 25m, 세로 약 9.2m의 초대형 전광판 2개가 설치됐고, 공연을 위한 가변 무대로 마련됐다. 스탠드 한 켠을 접어넣으면 콘서트 등을 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328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첨단 음향과 국제축구연맹(FIFA)의 시설기준(1500룩스)을 상회하는 조도 2000룩스의 조명 시설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자랑거리다.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벌써부터 하루 평균 1500여명이 찾을 정도로 서울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경기장을 돌아보면서도 걱정 하나가 고개를 든다. 월드컵 이후의 월드컵경기장은 어떤 모습일까. 축구 외에는 다른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축구전용구장. 서울을 연고로하는 프로 구단조차 없는 현실에서 축구전용구장의 역할은 무엇인지. 수영장, 헬스클럽 등 각종 체육시설과 할인점 등을 설치해 ‘놀리지 않겠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는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걱정이 있다”는 옛 문구가 어울리지 않게 스치는 것도 ‘월드컵 그 이후’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까닭일까.
<주성원기자>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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