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도시는 보수중]하자보수 실태와 대안은?

  • 입력 2001년 10월 16일 18시 28분


《입주 10년째를 맞은 경기 고양시 일산, 성남시 분당 등 수도권 신도시 일부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하자보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동안 쉬쉬해 오던 하자보수 소송이 공론화되면서 해당 주민과 건설업체, 행정당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도시 주민들의 하자보수 운동을 계기로 현행 하자보수제도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은 물론 건설업체들의

동향을 점검해 본다. 또 단순한 하자 이외에 숨겨진 또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선진국의 한 차원 높은 하자보수 관리 실태도 알아본다.》

아파트 하자 보수 분쟁은 제도가 아니라 운용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제도상 입주자들은 사소한 부분까지 보호받을 수 있지만 전문성을 가진 시공사나 보증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자 여부를 공정하게 가리는 전문 중재기관이나 입주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확보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현행 하자 보수 체계〓공동주택관리령에 따르면 시공사가 하자보수 보증기관으로부터 하자보수비용(공사비의 약 3%)을 보증하는 증권을 받아 입주자 대표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 보증서는 하자가 발생했을 때 보증기관이 일단 보수 비용을 대고 나중에 시공사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증명서다.

▽끝없는 공방〓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하자가 발생하면 시공사에 하자 보증을 요구할 수 있다. 공동주택관리령은 ‘입주자대표회의 등은 보증기간 내에 하자보수 발생시 사업주체에 보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사업주체는 3일 이내에 하자보수 계획을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공사가 하자보수를 거부할 경우 끝없는 공방이 이어지게 돼 있다. 현행법상 행정관청은 이 문제에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

95년 제정된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은 16층 이상 아파트 단지는 3년마다 전문기관의 정밀 안전진단을 받도록 돼 있지만 점검이 ‘형식적’이라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경우 98년부터 지난해까지 94개 단지가 정밀 안전진단을 받았지만 모두 A(양호)나 B(보통) 등급을 받았다.

▽힘든 권리찾기〓주민들은 시공사가 하자보수를 거부할 경우 법적으로 보장된 하자보수 보증금도 쉽게 찾을 수 없다. 보증금이 현금으로 예치돼 있지 않은 데다 건설회사들로 구성된 건설공제조합 등 보증기관은 좀처럼 보수 비용을 먼저 지급한 뒤 조합원인 건설회사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주민들은 필요한 시기에 보수를 받기가 힘들다.

입주민들은 시공되지 않은 경우나 정해진 규격에 미달한 자재로 시공된 경우도 하자로 보지만 보증기관에서는 이는 보증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타일이 벽에서 떨어질 경우 1년 이내에 문제를 제기하면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누수(漏水)’는 1년 이상 진행되다가 드러난다 해도 보증기간을 넘겨서 보수를 받을 수 없다.

▽분쟁 조정의 어려움〓입주자대표회의와 입주민이 하자에 이견이 있을 경우 하자보수 공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A아파트는 입주민의 동의 없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하자보수종료 확인서를 써주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분쟁 중이다.

▽대안은 있다〓하자보수 보증기간을 입주민이 하자발생을 인식한 날부터 계산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아파트유지관리 이기성 대표이사는 “비전문가인 주민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하자는 인식한 날로부터 보증기간을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각 자치단체에서 분쟁조정 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고양시는 최근 ‘공동주택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주민간의 분쟁이 법정까지 가기 전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이동성(李東晟) 주택산업연구원장은 “하자 보수 분쟁은 시공사나 보증회사가 하자를 인정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중재기관이 입주자의 하자보수 요청이 있으면 일단 하자로 추정해 시공사나 보증회사 비용으로 전문 기관에서 하자 여부를 가리면 입주자들도 그 결과에 쉽게 승복해 분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민원부를 하자 없나" 업체 긴장

경기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의 하자 보수 요구 등 ‘아파트 소비자 보호운동’이 활성화되고 법정소송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동아일보 15, 16일자에 잇따라 보도되자 주택건설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건설업체들은 신도시는 물론, 최근 몇 년 새 시공했거나 시공중인 아파트의 이상 유무를 긴급 확인하고 있고, 민원이 야기될 만한 하자가 있을 경우 조기 대응토록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일부 실직 건설 기술자들이 신도시 건설 당시 부실 시공 사례를 ‘양심선언’하겠다는 ‘협박성’ 전화까지 해오고 있어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일단 자사 현장에 큰 문제가 없음을 재확인했지만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 다툼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조기에 대처키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또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적으로 설치돼 있는 13곳의 애프터서비스센터를 통해 접수된 하자 보수 민원에 대해서는 즉각 서비스팀을 보내 해결하도록 했다.

현대건설도 공사 현장 관리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LG건설은 최근 본사에서 대책회의를 갖고 본사 차원에서 현장 상황과 주민 반응을 긴급 파악했다. LG건설은 또 공사중인 수도권 아파트 현장에서 소장 주재로 별도 사후 관리 회의를 갖고 누수 배관 등 하자가 많이 발생하는 설비 분야를 특별 관리토록 할 방침이다. 롯데건설은 정해진 하자보수 기간에 얽매이지 않고 하자가 발생되면 즉각 보수해 주는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기로 했다.

주택업계 관계자는 “최근 건설업체들이 자사 아파트 입주자를 평생고객으로 만든다는 마케팅 전략을 갖고 있다”며 “입주자가 안전진단을 해 내력벽이나 기둥과 같은 주요 구조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경우 이를 무시할 업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서울 수도권=정연욱 손진흡 차지완 김현진 기자 jywll@donga.com

일산=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분당=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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