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빈자의 핵무기

  • 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40분


미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의 알카트레즈섬을 장악한다. 그들의 무기는 VX 신경제 폭탄. 한 방이면 샌프란시스코 인구 전체를 없애고도 남을 초강력 화학무기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전설적인 탈옥수(숀 코너리 분)와 화학무기 전문가(니컬러스 케이지 분)가 투입되는데…. 몇 해 전에 나온 영화 ‘더 록(The Rock)’의 줄거리다. 이 영화처럼 생화학무기는 그동안 할리우드의 단골 소재 중 하나였다.

▷바야흐로 눈앞의 현실이 할리우드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요즘 세상이다. 민간 항공기가 초고층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은 것부터가 픽션보다 더 생생한 현실이었지만, 미국의 아프간 공습 이후 2차 테러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플로리다에선 25년 만에 탄저병 환자가 발생해 미 정부가 생화학 테러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소식이다. 공기로 전염돼 폐렴 패혈증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탄저균(Anthrax)은 생물학무기의 대표적인 재료 중 하나다.

▷생화학 무기는 흔히 ‘빈자(貧者)의 핵무기’라고 불린다. 고도의 기술력과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핵무기에 비해 제작이 훨씬 용이하고 생산 비용 또한 핵무기에 비해 10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핵무기에 못지 않은 효과를 지닌 대량살상무기(WMD)임에도 증거인멸이 용이하고 사용이 편리하다는 ‘이점’도 있다. 대상이 무차별적이고, 목적 또한 불분명하다는 특징을 갖는 ‘뉴테러리즘(New Terrorism)’의 신봉자들에게는 안성맞춤의 무기인 셈이다.

▷생화학 무기는, 그것이 실제로 테러에 이용되는 사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을 수 있다. 그래서 얼마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테러리스트들은 우리가 스스로를 두려움의 감옥 속에 가두기를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썼다. 그의 말처럼 두려워하고만 있어선 안되겠지만,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도 분명 남의 일은 아니다. 우리 북쪽에는 세계 3위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보유 국가가 버티고 있으므로.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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