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상일/고이즈미 총리 보십시오

  • 입력 2001년 10월 6일 19시 10분


예부터 한국에서는 비록 반갑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찾아오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귀하의 방한을 맞이하는 한국 국민의 눈빛은 결코 따뜻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귀하를 국민 모두가 함께 훈훈한 마음으로 환대할 수 없는 현실을 대단히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흔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일의대수(一衣帶水)’의 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를 함축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표현에서는 이와 같이 친밀한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특이한 양태로 표출되어 왔습니다.

귀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에도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긴장의 핵심은 과거사에 대한 귀국 일본의 이중적 태도였고, 갈등의 주체는 늘 일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일본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유감-반성’과 ‘정당화-미화’의 사이를 상황과 필요에 따라 거침없이 반복해 왔고,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불신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1998년 김대중(金大中) 한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두 나라는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천명하고 이를 문서화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때까지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온 두 나라의 ‘특수한 관계’를 불완전하지만 그런 대로 매듭짓고 ‘민족간 화해’의 길로 이어질 것을 우리는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귀하의 정권이 탄생하기 전부터 진행된 것이지만, 귀하의 정권 출범과 함께 불거진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이에 대한 귀 정부의 미온적 대응과 귀하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는 한일관계를 다시 파행상태로 몰아 넣었습니다. 귀하와 일본 정부의 이러한 대처는 분명히 ‘공동선언’의 정신과 배치되는 것이고 모든 한국인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방한과 함께 제시될 역사인식에 대한 귀하의 ‘진전된 입장’은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가늠할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일본이 직면한 지도력의 위기와 파벌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적 재도약을 위하여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는 귀하의 정치적 용기와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성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후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 속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귀하가 일본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국내의 정치 및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평화를 위한 국제적 공헌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국가 침로(針路)를 이끌기 위하여 노력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귀하가 밝힌 자위대의 국군화를 위한 헌법의 조기 개정, 총리의 자격으로 행한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수정에 대한 부정적 태도, 재일동포의 참정권 반대 등에 내포돼 있는 의도에 우려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급변하는 세계 역사 속에서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중국 세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긴밀한 연대와 협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세 나라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역사인식이 필수적이고, 일본이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귀하가 정치적 결단과 용기로써 국내 정치에서 ‘고이즈미 혁명’을 주도한 것과 같이 한국방문을 계기로 한일간의 ‘민족화해’의 물꼬를 트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고, 나아가 동아시아 협력의 새로운 기틀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한상일(국민대 교수·국제정치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