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먼저 테러 원인과 싸워라

입력 2001-10-04 18:35수정 2009-09-1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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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번째 전쟁은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 배후로 지목한 미국의 분노 앞에 아프가니스탄 텔레반 정권의 버티기도 시간과의 싸움처럼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미국의 막강 군사력은 당장이라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지배하에 있는 이 헐벗은 나라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듯한 태세이다.

▼경제평등이 테러 막을 수도▼

미국은 이 전쟁을 ‘무한 정의(Infinite Justice)’로 명명했다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로 바꾸었다. 테러로 상처받은 것은 미국의 자존심과 그 상징물들뿐만 아니라 바로 ‘정의’와 ‘자유’였다는 인식을 심기 위함인 듯하다.

가공할 반인륜적 테러범죄를 국제사회에서 추방할 일은 테러조직의 배후인물을 끝까지 색출해 국제법정에 세우고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 테러의 지원세력들을 적으로 낙인찍어 고립시키고, 테러조직의 자금원을 고갈시키는 일이 급선무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최근 189개 유엔 회원국들에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야 할 의무를 지우자는 미국의 제의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미국의 조치는 단순한 명분 축적을 넘어 확실히 효과적인 테러 진압 및 방지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 든다. 이미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한 서방 선진국들과 아프간 인접국들의 가세까지 고려하면 탈레반 정권과 빈 라덴은 외부에서 완전 고립된 절해고도 같아 보인다.

미국의 심장부에 대한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전쟁, 다시 반복될 피의 복수라는 악순환을 내다보며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는 시각도 있다. 서방 기독교문명과 중방 이슬람문명의 충돌은 외관상 현실화된 것 같지만, 이 충돌의 원인으로 지목된 원리주의는 스스로의 역동성에 따라 역사 속에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하게 예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피할 수 있는 충돌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현실정치세력의 반문명적 근시안이다. 이 근시안은 이미 정치세력화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도 해당된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정치세력과 이에 ‘무한 연대’를 표명한 인접 강대국 정치세력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더 큰 문제이다. 그들은 무엇이 미국을 격동시킨 테러의 원인이며, 테러리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테러리스트인지에 대해 냉철한 자기 성찰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테헤란과 다마스쿠스가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자유투사’와 테러리스트를 구별하지 못한다. 현실정치에서 이 구별을 무시한다면 독립기념관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세워놓고 만대의 교육장으로 삼는 우리나라도 간접 테러지원국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수의 지성들이 미국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귄터 그라스를 비롯한 5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은 미움을 억제하고 미움의 원인을 제거할 때 테러는 사그라질 것이며 국제테러는 국제적인 경제평등을 이룩해야만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과도하고 부적절한 무력 사용을 자제할 것과 이 지역 연쇄테러의 원인인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의 시민 종교단체들과 유럽의 반세계화운동 반전운동단체들도 미국의 보복전쟁과 아랍계 등에 대한 인종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할 보복전쟁은 무고한 양민들의 희생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을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아닌 평화적 노력 경주를▼

테러리즘은 정부나 공동체에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특정 목적을 강요하기 위해 민간인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는 행위이다. 테러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테러에 대한 무차별 보복으로 회색 전쟁을 벌이는 것은 테러와 같은 잔혹 행위이다. 그러므로 국제사회가 테러문제를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무한전쟁 수행에 들어갈 막대한 비용을 인명살상과 파괴에 쓸어넣기보다 테러 희생자의 창조적 부활과 세계평화를 위해 쓰도록 해야 한다.

테러 없는 세상을 열자면 무엇이 진정 테러인지, 테러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솔직히 밝혀야 한다. 도덕성 없는 권력처럼 사랑 없는 정의도 폭력이란 점을 깊이 헤아렸으면 한다.

김일수(고려대 교수·법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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