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석춘/깡패식 언론개혁 이라니…

입력 2001-09-29 00:31수정 2009-09-19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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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세정의’와 언론사의 ‘투명경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연초부터 벌여 온 ‘언론개혁’의 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구속된 언론사 대주주의 재판에서는 정부가 세무조사 이전부터 신문 사설과 칼럼에 대해 불만을 전하다가 세무조사 과정에서 필진에 대한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한 국회에서 야당 의원은 정부가 비판적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요 간부 언론인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요구했다고 인사 조치 대상 언론인들의 실명까지 공개하며 주장했다.

이같은 시도들이 먹혀들지 않자 소위 ‘언론개혁’을 주장해 온 단체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정부는 조세정의를 명분으로 비판적인 언론사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세금을 추징하고 대주주들을 구속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언론재단이 6월 개최한 ‘시민언론단체 간사 연수’ 참석자들의 발언 내용이 공개되면서 이런 주장들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동안 정부와 한통속이 돼서 언론개혁에 목청을 높여온 연수 참석자들의 발언을 보면 이들이 주장한 언론개혁운동이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 또 그 운동의 방식이 얼마나 한심한 것이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깡패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윤전기에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 있다”는 등의 발언이 도대체 상식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일정한 수준의 상식은 지켜져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최근 테러 사건을 둘러싼 보도와 논평을 보며 우리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아무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서로 다툴지언정, 그래서 서로 공격하고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할지언정 죄 없는 민간인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천명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이번 테러는 몰상식하고 비열한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보복을 한다면서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양민을 수천명, 아니 수만명이라도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몰상식하고 비열한 행동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종교로서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다를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목표의 차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갈등하고 다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투는 방법이 상식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도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그 다투는 방식은 상식에 기초해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른바 보수신문인 동아와 조선, 그리고 진보나 개혁언론을 자처하는 신문 사이에도 다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상식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윤전기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발상은 미국이 미우니 수만명이 들어 있는 건물을 폭파해 버리겠다는 발상을 연상시킨다. 보수 신문은 ‘깡패’고 진보신문은 ‘절대선’이라는 식의 발상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보수가 있어야 진보가 있을 것 아닌가. 어떻게 보수 없이 진보가 있을 수 있는가. 백보를 양보해서 보수 신문이 깡패라고 치자. 그렇다고 개혁을 위해 진보가 깡패 방식을 사용한다면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조세정의를 구현하느라 국립묘지와 마니산의 성지까지 다녀오고 애국가를 4절까지 반드시 불러야 직성이 풀린다는 자칭 ‘의인’이 축재과정을 둘러싸고 엄청난 의혹을 사고 있다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검찰이 수차에 걸쳐 인지한 범죄 혐의를 번번이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감찰본부’를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 ‘이용호 게이트’도 상식이 통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정치적 목적이 전혀 없는 통상적인 세무조사요, 공정거래위 조사였다는 정부 주장의 허구성이 이제 하나 둘 양파껍질 벗겨지듯 드러나고 있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해당 언론사들이 정부의 언론에 대한 부당한 인사 요구와 협박이 있었다는 야당 의원의 주장을 ‘간접화법’으로 보도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현재로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지고야 마는 법이다.

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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