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金과 주식은 다른데…

  • 입력 2001년 9월 27일 18시 53분


99년 5월 당시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이 10조원짜리 ‘바이코리아’ 펀드를 만들어 금융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때였다. 이 회장은 전국 백화점 등을 돌며 투자설명회에 직접 강사로 나서 ‘바이코리아’를 외치며 주식 갖기 캠페인을 벌였다.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주가가 올라야 하고 그러기 위해 국민 모두가 주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금융감독위원회의 한 고위 간부는 “현대가 건설현장에서 돌관작업하듯이 금융업을 하려고 한다”며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저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라며 걱정했다.

현대증권은 지금 미국계 회사인 AIG컨소시엄에 경영권이 넘어가고 국민세금인 공적자금을 받을 예정이다. 주식 ‘전도사’였던 이 회장은 경영부실 책임을 지고 현대그룹에서 물러나 칩거하고 있다. 현대투신증권 주식에 투자한 우량고객들은 감자(減資)위기를 맞아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릴 형편이다.

‘이익치 캠페인’으로부터 2년반. 미국 테러사태가 터지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을 했듯이 지금은 국민들이 주식 사모으기 운동을 할 때”라고 말했고,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증권업협회에 상품개발을 지시했다. 증권사 사장들은 ‘주식모으기 펀드’를 내놓기로 했다.

‘금모으기’와 ‘주식 사모으기’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금을 모아 외국에 팔면 외화가 들어와 외환보유액이 올라간다. 그러나 일각에서 주식을 사 모은다고 해서 주가가 덩달아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가계에 주름살만 깊어진다. 주식은 냉정하다.

정부가 관치(官治)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들어간 한국투신 대한투신 등 3개 투신사를 캠페인 대상에서 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주식사모으기도 ‘애국’이라면 국민세금을 받은 회사들이 더 열심히 이 상품을 팔아야 하지 않을까.

‘주식모으기’ 펀드에서 손해라도 나면 정부가 공적자금이라도 줄 생각일까.

최영해<경제부>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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