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정치 가면극'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26분


인물을 뜻하는 영어 ‘person’은 라틴어의 가면(persona)에서 왔다. 로마의 희극시인 테렌티우스가 ‘인물’이라는 의미로 쓴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연기자, 가면을 쓴 사람이 인간, 인격의 뜻으로 번지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얼굴을 덮어 위장하는 가면이 퍼스낼리티의 어원이라…. 인간이 이중적이고 다층적(多層的)이며 위선 거짓에서 자유롭지 않은 존재임을 꿰뚫어보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도 실감난다.

▷정작 가면을 뜻하는 영어 마스크는아라비아어의어릿광대(maskara)가 그 뿌리다. 이 말이 이탈리아 프랑스에 스며들고 영어로 쓰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 가면은 예부터 사냥 전쟁에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그리고 신성한 제례의식 때 쓰이다가 나중에 가면극 같은 예능도구로 발전했다고 한다. 가면극 가면무도회에서 가면은 배우의 정체를 가리고 행동의 자유를 넓히는 편리한 도구가 된다.

▷정치를 가면극처럼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국회라는 무대에서 표정을 바꾸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의를 외치지만 기실 연기일 뿐임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이용호 게이트’로 온통 세상이 시끄럽고 여당이 코너에 몰린 판에 야당의원의 이권운동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사들이기 위해 야당의원이 압력을 넣었다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수협의 매입을 국정감사 등에서 가로막고 한나라당 주진우 의원 계열사에 수의계약 하도록 작용했다는 것이 수협측의 주장이다.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의 ‘국감을 빙자한 이권운동’을 질타하고 있다. 야당은 ‘이용호 게이트’를 물타기 하려는 거냐고 되받아 친다. 여권을 상대로 한 의혹 규명에 야당이 제힘을 발휘하려면 책잡힐 일도 없어야 한다. 가뜩이나 야대(野大) 국회의 책임도 무거워진 판이다. 국감이라는 무대를 빌려 정체를 가리고 제 기업을 위한 이권을 꾀했다면 참으로 비판을 면치 못할 일이다. 정치가 가면극으로 여겨져서야 야당 설자리만 더 좁아지지 않겠는가.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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