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美테러후 "누가 진짜 프로냐"…증시 진검승부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51분


증권가는 지금 진정한 실력을 겨루는 피 말리는 경연장으로 변해있다. 전대미문의 미국 테러 충격 탓에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젊은 분석가(애널리스트)와 투자전략가(스트래티지스트)들의 프로 정신과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기 때문. 실력에 따라 몸값이 수십배까지 차이가 나는 냉정한 증권가에서 이들은 지금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프로 정신이 시험받는다〓테러가 발생한 다음날 수십권의 증권사 데일리(일일 시황보고서)는 사실상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보고서가 하루 전날 작성된 탓에 초유의 테러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보고서는 그와 무관한 한가한 내용으로 차 있었던 것.

그러나 단 한 곳, 현대증권만은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제목으로 오전 2시까지의 각 나라 환율 및 원자재 동향 등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12일 자정부터 박문광 팀장을 비롯한 8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다시 회사로 모여 오전 4시까지 보고서를 새로 작성했기 때문. 긴급 보고서를 작성한 오현석 선임연구원은 “맞히느냐, 틀리느냐는 둘째 문제고 일단 시장 상황에 맞는 의견을 내놓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증권사들이 13일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분석자료를 e메일로 발송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

한 펀드매니저는 “보고서를 받아보니 이런 긴급 상황에서 누가 프로정신이 있는 애널리스트인지 구분이 가더라”며 “내용의 적중 여부와는 별개로 투자자에게 최대한 정보를 알려주려 한 이들에게는 더 큰 신뢰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실력만이 말한다〓전례가 없는 사건인지라 그야말로 애널리스트들의 실력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이처럼 큰 사안에 대한 분석 능력은 △역사에 대한 통찰 능력 △사태의 성격 파악 능력 △한 사건이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 파악 능력 등에서 결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 한마디로 충분한 공부와 통찰력이 겸비돼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뛰어난 언변으로 보고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거나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시장을 분석해 인기를 끄는 태도로는 이번 사태를 제대로 분석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애널리스트의 평가는 펀드매니저들에 의한 ‘인기 투표’로 정해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진짜 실력을 가늠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전쟁이나 국제 관계 및 투자자의 심리 등에 대한 공부량과 비상시국에 대한 대처 능력 등 애널리스트의 진짜 실력차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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