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열정 담긴 감동의 무대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22분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가 27일 서울의 늦여름 밤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968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는 세계 발레사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공연이 열렸다. 바로 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의 ‘스파르타쿠스’였다.

33년 뒤. 이번 서울 공연은 78세의 노 안무가가 한국의 발레리노(남성 발레무용수)들과 함께 그 영광의 재현에 나선 무대다.

‘스파르타쿠스’가 보여준 발레리노의 이미지는 당시의 감각으로 볼 때 ‘충격’이었다. 이 때까지 발레리노는 ‘장미의 정령’의 니진스키처럼 흔히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아도니스에 비유됐다.

이 같은 이미지를 확 바꾼 게 남성 발레 ‘스파르타쿠스’였다. 특히 40여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에너지는 발레리노를 아도니스가 아니라 헤라클레스로 만들었다.

국립발레단이 ‘스파르타쿠스’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느냐는 발레리노들의 기량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무대에서 보여준 주역들의 기량과 연기력은 압도적으로 빛났다. 타이틀 롤을 맡은 이원국은 카리스마 넘치는 스파르타쿠스로 안정된 테크닉이 돋보이는 크랏수스 역의 신무섭과 대조를 이뤘다.

이원국과 프리기아 역의 김지영이 펼친 2인무는 섬세하게 결합된 포즈의 파노라마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관객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김주원의 예기나는 요염하고 관능적이었다. 예기나와 청초하고 부드러운 프리기아가 서로 다른 색깔로 빛나면서 극적 갈등을 더욱 고조시켰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의 백미로 불리는 남성 군무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 같은 군무의 약점은 미숙한 군무 진의 역량이 결정적이지만 안무가의 책임도 있다.

무용수들이 빠르고 강렬한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연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고난도의 점프와 회전, 스피드를 따라가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동작의 강약, 빠르기의 차이, 구성상의 기교 등이 어우러져야 하는 데 지나치게 육체의 힘에만 의존한 결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 아쉬움은 마지막 레퀴엠 장면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노 안무가는 인생의 원숙한 경지에서 샘물처럼 뿜어져 나오는 구원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죽은 영웅 스파르타쿠스를 안고 있는 프리기아. 이 장면에서 김지영이 보여준 탁월한 연기는 감동적이다. 마치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이 장면에 겹쳐지는 또 다른 영웅이 있다. 관료적인 삭막한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오직 발레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일관된 인생을 살아온 그리가로비치 자신이 아닐까.

발레야말로 그를 안고 있던 프리기아인 것이다. 무겁고 진지한 작품 앞에 관객은 입을 다물며 신성함을 느끼게 된다.

공연안내

#9월1일가지 평일 오후7시반, 토 오후4시(수금 이원국 김지영 신무섭 김주원, 목토 김용걸 장운규 김주원. 프리기아 역은 목 김애정 토 배주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6만원

#1588-7890

장선희(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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