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스포츠인물포커스]美LPGA 풀시드 따낸 이정연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37분


‘내일은 내가 스타’ 이정연이 자신의 ‘비밀병기’를 공개하며‘미국정복’을 다짐하고 있다.
‘내일은 내가 스타’ 이정연이 자신의 ‘비밀병기’를 공개하며‘미국정복’을 다짐하고 있다.
‘211달러’.

이정연(22·한국타이어)은 평생 이 숫자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골프인생의 ‘천당과 지옥’을 가른 숫자이기 때문이다.

올시즌 퓨처스투어(미국여자프로골프 2부투어) 최종전인 베티푸스카클래식 최종 3라운드가 열린 14일. 이정연은 한장 남은 2001년시즌 미국LPGA투어 풀시드 카드를 놓고 외국선수가 아닌 후배 김주연(20·고려대)과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이정연은 마지막 18번홀을 버디로 장식했지만 고개를 떨어뜨려야했다. 결과는 공동 17위(2언더파 214타). 반면 김주연은 합계 5언더파로 경기를 마쳐 공동7위가 거의 굳혀진 상황.

그대로 순위가 확정된다면 지난 1년간의 고생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이정연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종전 결과에 상관없이 퓨처스투어에 할당된 내년시즌 미국LPGA 정규투어 풀시드 카드 3장중 이미 2장을 나눠가진 상금랭킹 1,2위 베스 바우어(미국)와 앤젤라 부즈민스키(캐나다)가 18번홀에서 나란히 버디를 낚으면서 합계 6언더파를 기록, 김주연을 공동 9위로 내려앉힌 것. 이렇게 해서 이정연은 김주연을 ‘211달러 차’로 제치고 상금랭킹 3위(4만8272달러)로 그토록 갈망하던 미국LPGA 무대를 밟게 됐다.

“꿈만 같아요. 주연이도 고생을 많이 했는데 한국선수끼리 경쟁하게 된 것이 무척 안타까워요. 만약 주연이가 1타만 더 줄였다면 제가 2달러 차이로 질 뻔했어요.”

이번 대회 결과를 놓고 이정연은 ‘억세게 운이 좋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결코 행운만은 아니었다. ‘기필코 풀시드 카드를 따내겠다’는 집념과 노력의 결과였다.

어머니가 운전하는 미니밴을 타고 미국전역을 돌아다니며 겪은 고생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특히 200여명의 퓨처스투어 선수중 올시즌 19개 전체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이정연이 유일.

“지난해에는 상금랭킹 3,4위가 70달러차이로 가려졌데요. 그래서 한푼이라도 더 총상금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행군을 했어요.”

무리한 대회출전탓으로 이정연은 한달전 허리에 큰 탈이 났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허리가 펴지지 않아 일어설 수가 없었다. 마지막 대회에서는 거의 팔로만 스윙해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고 끝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 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평소 ‘승부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었기에 궁금했다.

“저한테는 마지막 기회였거든요. Q스쿨은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합격하기 힘드니까요”.

정말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올해까지 정규투어 풀시드를 따내지 못하면 스폰서계약이 자동해지될 상황이었기 때문.

이정연은 99년말 한국타이어와 ‘4년간 105만달러’를 지원받는 파격적인 스폰서계약을 했다. 175개국에 타이어를 수출하는 스폰서측은 자사브랜드를 전세계에 홍보할 스포츠 유망주를 물색하던중 ‘차세대 주자’로 부상한 이정연을 낙점한 것.

하지만 스폰서계약에는 ‘조건’이 달려있었다. ‘2년안에 풀시드로 미국LPGA 투어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든든한 스폰서가 생긴 저를 무척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척 부담이 되더군요. 20만달러 이상을 지원해 준 지난해에 Q스쿨에서 낙방한 이후에는 더욱 조급해 지더라구요.”

풀시드 획득으로 이정연은 계약기간이 2004년까지 연장됐다. 게다가 내년 LPGA투어에서는 우승시 상금액의 100%, 준우승시 50%, 톱10 진입시 20%의 보너스를 받게 된다.

이정연이 골프를 시작한 것은 다른 톱클래스 선수와 비교하면 다소 늦다. 중2때 운동삼아 골프를 시작했고 ‘프로골퍼가 되겠다’며 본격적으로 골프에 매달린 것은 고2때 언남고에서 골프부가 있는 서문여고로 전학간 이후.

“당시 서문여고 골프부에는 동급생인 한희원이 있었어요. 희원이를 옆에서 보니까 제 골프실력도 저절로 늘더라구요. 대표 상비군에 뽑히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어요”.

이정연은 사람 운(運)도 따랐다. 레이크사이드CC 윤맹철사장의 배려로 고1때부터 연습장으로 레이크사이드CC를 사용하는 ‘특혜’를 받았고 한미스포츠 김유환사장으로 부터는 주니어시절부터 골프공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저는 일단 20대 후반까지만 프로선수생활을 할 예정이에요. 투어생활 때문에 40세가 넘어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면서까지 결혼도 못하는 프로생활은 싫거든요”.

남들은 ‘미국LPGA 명예의 전당 입성’등 거창한 목표를 거론하는데 다소 의외의 발언이었다. “물론 앞으로 7,8년간은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만약 투어생활을 이해해 주는 배우자를 만나고 제가 LPGA무대에서 충분히 통할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목표를 수정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새로운 인생을 위해 투자해야죠”.

그렇다면 이정연 자신이 생각하는 단점은 무엇일까.

“너무 예민하다는 거예요.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데 10,11월에 쉐타입고 치는 것이 무척 싫어요. 또 새 장갑이 꼭 맞아야 성적이 좋은 징크스가 있어요. 장갑은 22사이즈를 쓰는데 다른 사람보다 새끼 손가락이 조금 짧아 끝이 남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부터라도 맞춤주문을 해야 할까봐요”.

1m75, 66kg의 ‘슈퍼모델급’ 체격을 지닌 그의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는 240야드. ‘거리’가 아쉬워 본 적은 없다. 시급한 것은 홀컵까지 100야드 안팎거리에서 버디찬스를 만들어낼수 있는 정교한 아이언샷을 갖추는 것. 퓨처스투어에서 1년간 미국잔디에 적응을 했다지만 아직도 찍어치는 아이언샷에 익숙치 않다. 미국그린에 확실히 적응하는 것도 올 동계훈련중 집중훈련해야 할 항목이다.

이정연은 10월 미국LPGA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기 직전까지는 내달 5일 개막하는 한빛증권클래식 등 국내대회에 계속 출전할 예정이다.

“부상이 재발되면 안되니까 무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신경이 무척 쓰이네요. 미국LPGA 풀시드권자가 예선탈락이라도 하면 말들이 많을텐데….”

‘미완의 대기’ 이정연. 그의 마음은 벌써 미국LPGA투어로 향하고 있었다.

<안영식기자>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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