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노트]강정인 교수 "서구중심주의 극복 방법은?"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32분


나는 근대이후 비서구문명이 서구문명의 팽창과 정복에 직면하면서 내면화하게 된 서구중심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서구중심주의란, 서구인이건 비서구인이건, 맹목적으로 서구의 이념, 가치, 제도 등을 보편적이고 우월한 것으로 제시하거나 받아들이는 문화적 현상을 지칭한다.

서구중심주의가 비서구인들에게 끼치는 일반적 폐해는 서구중심주의가 궁극적으로 비서구인들로 하여금 서구문명의 우월성과 보편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서구의 문화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비서구인들은 서구문명을 유일한 보편적 대안으로 상정함에 따라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게 되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서구중심주의의 학문적 폐해는 서구의 ‘선진적’ 학문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기사회의 현실과 유리된 서구의 문제의식마저도 우선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내면화하여 자기 사회에 대한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나는 서구중심주의가 한국 정치의 이념적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세 편의 논문을 통해 검토한 바 있다.

한국의 보수주의에 관한 글에서는 한국 보수주의가 지닌 사상적 빈곤의 주된 원인으로 근대화의 경험이 서구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정치적 보수주의와 철학적 보수주의간의 극심한 단절과 괴리를 강조했다.

한국의 민주화를 검토한 글에서는 한국의 민주화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보수적 틀 내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주된 원인의 하나로 냉전질서를 포함한 서구중심주의의 내면화 과정을 지적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여성해방에 대한 이론을 분석한 글에서는 그들의 이론 역시 상당 부분 서구이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을 위한 예비적 시론’이라는 글에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 전략을 동화적, 역전적, 해체적 전략으로 나누어 고찰하면서 각 전략의 장점과 한계를 논한 바 있다.

최근에는 서구중심주의를 주제로 쓴 여러 논문들을 한데 묶어 비판적으로 음미하면서 필자의 생각을 심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서구중심주의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구문명 내에서 유럽과 미국의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 경제적 우열의 문제가 문화적 전략의 성패와 어떤 연관을 맺는가 등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최근 국내 학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탈서구중심주의적 시도는 내 연구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내 연구도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조그만 바램이다.

강정인(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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