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종교인에게 듣는다]<1>정의채 신부

  • 입력 2004년 3월 25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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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채 신부는 “서로 사랑하자, 서로 용서하자, 서로 죽읍시다, 서로 힘차게 다시 살아납시다”라고 기도하고 있다.     -김미옥기자
정의채 신부는 “서로 사랑하자, 서로 용서하자, 서로 죽읍시다, 서로 힘차게 다시 살아납시다”라고 기도하고 있다. -김미옥기자
《탄핵 정국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지혜와 통찰력이 담긴 말을 듣는 자리를 매주 금요일 마련한다. 》

“이젠 탄핵 여부가 아니라 분열과 혼란으로 나라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다산관 5층 연구실에서 만난 정의채 신부(79)는 요즘의 사회 혼란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가톨릭대 총장 등을 지낸 학자 신부인 그는 2시간 동안 여야를 떠나 종교인이자 지성인으로서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시종 민주주의의 원칙과 서로를 감싸는 사랑으로 이 사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공허한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사실에 근거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가 초유의 중대사인 탄핵을 여론 수렴과 토론 과정 없이 밀어붙인 거대 야당에 1차 책임이 있어요. 그것이 국민 대다수의 반발을 불렀고 야당은 지금 회복 불능의 빈사 상태에 빠졌지요.”

―국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일리 있습니다. 국회에서 물리적 폭력이 일어난 것은 여야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소추권은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지요. 국회가 그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했느냐는 총선에서 표로 결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탄핵의 정당성은 헌법재판소에서 가릴 사항이지요.”

―일부에선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하는데….

“집권 1년간 실언과 실정을 거듭한 노무현 대통령이 궁극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지면서 이길 줄 알고 이기면서 질 줄 알아야 하는 자리지요. 동양에서 성군(聖君)의 요건은 치산치수(治山治水)와 덕치(德治)입니다. 치산치수는 요즘 경제를 의미하는데,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자이며 경기불황도 계속되고 있어요. 탄핵 과정에서 야당을 설득하지 않고 맞대결로 나간 행위도 덕치를 망각한 것입니다.”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분열이 심각합니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할 말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정신적 폭력을 포함해 모든 폭력은 배격해야 합니다.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칠 행동도 자제해야지요. 의사를 표현하되 법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합니다.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치입니다. 법이 잘못됐으면 법 개정을 요구해야지 법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가져야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광복 이후 정치사를 지켜본 저는 ‘한 쪽으로 너무 힘이 쏠리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자유당 공화당 등 거대 여당의 발생과 몰락은 그런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번엔 거대 야당으로 인해 탄핵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총선에선 여야 균형의 구도가 지켜졌으면 합니다. ‘우리만 옳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지요. 보수-진보, 민주-반민주로 갈라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는’ 자세는 반민주적 행태입니다.”

―종교인으로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먼저 정의로워야 합니다. 결국 마음이 문제이고 그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부활을 앞두고 고난 받았던 사순절 시기입니다. 예수는 제자를 위해 ‘저들이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올렸고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같은 정신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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