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찰 '향피 인사제' 시행 2년 시끌시끌

  • 입력 2001년 7월 29일 18시 56분


경찰공무원과 지역유지간의 유착 고리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도입한 경찰의 ‘향피(鄕避)’ 인사제도가 시행 2년을 맞아 격렬한 찬반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인천 호프집 화재사고로 지역 유흥업주와 단속 경찰관간의 비리가 드러난 99년 11월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총경(경찰서장급) 이상 승진자를 출신지가 아닌 지역으로 배치하는 향피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향피제도는 시행초기 경찰 개혁의 상징적인 조치로 환영을 받아왔던 게 사실. 하지만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최근 조직 내부의 인화를 깨뜨리고 경찰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문제점〓총경 승진 후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의 지방경찰청 경비과장으로 발령받은 A씨는 얼마 전 관할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시위에 대비해 어느 곳에 얼마만한 경찰을 배치해야 하는지, 수백명의 시위대를 어느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허둥댈 수밖에 없었던 것. 다행히 이렇다할 불상사는 없었지만 시위 집회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라 지역 경비책임자로서 걱정은 태산같다.

“난생 처음 와본 곳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길눈조차 어두운데 제대로 상황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위현장에서 이 지역 출신 부하들에게 일일이 물어봐야 상황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실정입니다.”

A씨의 걱정은 향피제도 도입 이후 낯선 지역에 부임한 지휘관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애로사항이다.

지역출신 참모들도 불만이 많다.

모 지방경찰청 과장인 총경 B씨는 얼마 전 오전 참모회의에 참가한 뒤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다른 지역 출신인 청장이 지역여건을 도외시한 채 원칙대로만 일을 처리하려고 해 답답하다”며 “청장과 참모들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어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아무도 나서서 의견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직 내 갈등은 ‘화합차원’에서 인사교류를 한 영호남 지역에서 더욱 심하다. 이 지역 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에는 간부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으나 타지역에서 온 과장과 이 지역 과장들간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기면서 이 같은 토론문화가 사라졌다”며 “이런 여건에서 타지역 출신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논란과 개선의 여지〓경찰청은 올 1월 ‘초임에만 향피 원칙을 적용하고 그 다음부터는 희망하는 곳에서 근무하도록 한다’는 새 인사지침을 마련했다.

향피제도의 근본 취지가 부정부패 근절에 있는 만큼 시행 과정에서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제도 자체는 계속 살려나가겠다는 것.

지방의 경찰서장을 지낸 경찰청의 한 간부는 “예컨대 출신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죽마고우에게서 이런저런 청탁을 받으면 거절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아니냐”며 “향피제도는 우리나라처럼 인맥이 뿌리깊은 사회에서 공정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 조직 내에서 상하간에, 또는 동료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있는 것을 전적으로 향피제도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향피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먼저 향피 인사는 경찰공무원임용령 제22조 ‘경찰공무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고지를 고려하여 보직하여야 한다’는 연고지 배치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 여기에다 자치경찰제를 강력하게 주장해온 경찰이 향피제도를 도입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에선 “9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부정부패 등 비리와 직접적으로 연루돼 징계를 받은 총경급 이상 경찰관은 6명”이라며 “이는 이 기간중 전체 징계경찰관 5571명의 0.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향피 제도가 경찰간부들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에서 생긴 제도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경찰청 인사관계자는 “이 청장이 퇴임하더라도 향피 제도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검찰 국세청 등과 비교해 보다 나은 제도로 계속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창원·대전·광주〓강정훈·이기진·정승호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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