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7월 11일 19시 2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텍스트가 된 사료는 조선 후기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녹취재(祿取才)’. ‘자비대령화원’은 1783년 정조대부터 1881년 고종대까지 국왕과 조정 신료들이 선발해 규장각에서 운영했던 당대 최고의 궁중화원과 그 제도를, ‘녹취재’는 그들이 치렀던 그림 시험을 말한다. 강 교수가 규장각의 근무일지인 ‘내각일력(內閣日曆)’ 1245책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이 기록엔 약 100년 동안 궁중화원 100여명이 치렀던 840여회의 시험 문제와 시험 성적 , 각종 평가 등이 담겨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미술사를 보아도 100년 동안의 이런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 기록 문화의 위대함에 놀랄 따름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사료를 놓치고 있었다니…. ”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신한평(신윤복의 아버지) 이한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후기의 최고화가들 모두 궁중화원 출신. 이같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사료와 이 책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최고화가들의 그림 시험 성적이니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정조가 한 번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보자마자 껄걸 웃게 그릴 것!’이라고요. 신한평이 그림을 그려왔는데 해학이나 여유가 없이 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었던지 정조는 화를 내며 신한평을 궁중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런 신한평이 순조대에는 높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취향의 차이였던 거죠. 한 번은 이인문의 그림을 놓고 한 신료가 꼴찌로 채점을 하자 정조가 이를 뒤집어 1등을 준 적도 있습니다.”
강 교수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속화(俗畵) 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시험 문제를 보면 속화 민화에 관한 것이 가장 많았고 당대 최고화가들이 그린 속화 민화를 국왕과 상류층이 감상했다는 사실. 그래서 강 교수는 “속화 민화는 민중들이 그렸고 저속한 그림이라는 기존의 견해는 무리이고 속화 민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 모두가 사료 분석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말한다. 궁중화원의 역사와 조선후기 회화사가 이 책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이 책은 8년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다.
“1994년 한신대의 유봉학 교수가 쓴 논문을 읽는데 ‘정조가 화원들에게 속화 시험문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간단히 그 내용 뿐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무언가 큰 것이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습니다.”
이후 그의 노력은 철저하고 집요했다. 2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에서 1245책에 이르는 ‘내각일력’을 샅샅히 뒤지며 녹취재 자료를 모두 찾아냈다. 한 글자의 실수도 막기 위해 두 번을 정독했고 꼼꼼하고 정확하게 해석을 해냈다. 그렇게 해서 꼭 8년만에 이번 책이 나온 것이다. 강 교수는 요즘엔 ‘조선후기 선(禪)에 관한 그림’ ‘18세기 풍속화’ 등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