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술사학자 강관식 교수 '궁중화원연구'펴내

  • 입력 2001년 7월 11일 19시 21분


'내각일력'제 56책에 실린 궁중화원 그림 시험관련 기록
'내각일력'제 56책에 실린 궁중화원 그림 시험관련 기록
국내 미술사학계에 특별한 책이 나왔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독특한 사료를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조선 후기 회화의 심층을 들여다본 강관식 한성대 교수(44)의 1200여쪽짜리 역저 ‘조선 후기 궁중화원 연구’(돌베개).

텍스트가 된 사료는 조선 후기 규장각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녹취재(祿取才)’. ‘자비대령화원’은 1783년 정조대부터 1881년 고종대까지 국왕과 조정 신료들이 선발해 규장각에서 운영했던 당대 최고의 궁중화원과 그 제도를, ‘녹취재’는 그들이 치렀던 그림 시험을 말한다. 강 교수가 규장각의 근무일지인 ‘내각일력(內閣日曆)’ 1245책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이 기록엔 약 100년 동안 궁중화원 100여명이 치렀던 840여회의 시험 문제와 시험 성적 , 각종 평가 등이 담겨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미술사를 보아도 100년 동안의 이런 기록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 기록 문화의 위대함에 놀랄 따름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사료를 놓치고 있었다니…. ”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신한평(신윤복의 아버지) 이한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후기의 최고화가들 모두 궁중화원 출신. 이같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사료와 이 책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최고화가들의 그림 시험 성적이니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정조가 한 번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보자마자 껄걸 웃게 그릴 것!’이라고요. 신한평이 그림을 그려왔는데 해학이나 여유가 없이 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었던지 정조는 화를 내며 신한평을 궁중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런 신한평이 순조대에는 높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취향의 차이였던 거죠. 한 번은 이인문의 그림을 놓고 한 신료가 꼴찌로 채점을 하자 정조가 이를 뒤집어 1등을 준 적도 있습니다.”

강 교수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속화(俗畵) 민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시험 문제를 보면 속화 민화에 관한 것이 가장 많았고 당대 최고화가들이 그린 속화 민화를 국왕과 상류층이 감상했다는 사실. 그래서 강 교수는 “속화 민화는 민중들이 그렸고 저속한 그림이라는 기존의 견해는 무리이고 속화 민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 모두가 사료 분석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말한다. 궁중화원의 역사와 조선후기 회화사가 이 책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이 책은 8년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다.

“1994년 한신대의 유봉학 교수가 쓴 논문을 읽는데 ‘정조가 화원들에게 속화 시험문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간단히 그 내용 뿐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무언가 큰 것이 있을 거란 직감이 들었습니다.”

이후 그의 노력은 철저하고 집요했다. 2년 동안 서울대 규장각에서 1245책에 이르는 ‘내각일력’을 샅샅히 뒤지며 녹취재 자료를 모두 찾아냈다. 한 글자의 실수도 막기 위해 두 번을 정독했고 꼼꼼하고 정확하게 해석을 해냈다. 그렇게 해서 꼭 8년만에 이번 책이 나온 것이다. 강 교수는 요즘엔 ‘조선후기 선(禪)에 관한 그림’ ‘18세기 풍속화’ 등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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