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불행한 여인 헬렌켈러의 진실 '헬렌 켈러'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5분


<< 한 여인이 있다.키가 크고 아름다웠던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모두가 결혼을 반대했다. 여인은 어느날 밤,짐을 챙겨 현관앞으로 나왔다. 연인과 도피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모른 체 하고 있었다.남자가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것이다. 다른사람의 도움없이 집밖으로 한발도 나갈 수 없던 가엾은 여인은 새벽까지 우두커니 서서 연인을 기다렸다.이일은 비밀에 붙여졌다.>>

◆ 헬렌 켈러/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656쪽 /1만5000원 /미다스북스

4년 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구름같이 모여든 청중 앞에서 러시아의 소비에트 혁명을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여성이 있었다. “동쪽에서 새 별이 떠올랐다! 고통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낡은 질서 속에서 새 세계가…. 전진하라, 동지들이여, 단결하라!”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자기의 말을 ‘읽어내는’ 다른 여자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그러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연설가. 그의 이름은 헬렌 켈러였다.

“헬렌 켈러는 전설 뒤에 숨어있었다. 그는 복잡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지만 성녀는 아니었다.” 1998년 쓰여진 이 전기(傳記)에서 저자는 공식적 보도사진 뒤에 감추어진 헬렌의 ‘숨은 모습 찾기’에 강한 의욕을 보인다.

그에 따르면 헬렌은 평범한 삶을, 사랑과 성(性)을 꿈꾼 평범한 여성이었고 남편과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세상의 바람 때문에 그의 정체성은 심각하게왜곡됐다.그는남들과 똑같은 개인적 행복의 소망을 미뤄둔 채 고통받는 사람과소외된사람을 위해 살아야만 했다.

모두가 그를 추켜세웠지만 ‘드높여진’ 헬렌 또한 사회의 희생자 중 하나였다. 그가 철학적 상념을 이야기할 때는 누구나 귀담아 듣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의견을 말할 때는 “자기가 세상을 얼마나 안다고…”라며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 특이한 인물을 이해하는데는 빼놓을 수 없는 ‘그림자 인물’ 이 있다. 자기 안에 갇힌 헬렌을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고 평생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준 사람, 애니 설리번. 이 책은 불우한 유년기를 포함해 세밀한 삶의 부분까지를 헬렌과 동등하게 비추어낸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용했으며, 애니는 헬렌에게 평생을 바친 ‘희생물’이 아니라 헬렌을 이용해 명예와 기회를 얻으려 했다는 일부의 시각 역시 저자는 냉정하게 들여다본다. 그러나 결론은 전통적인 해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마치 부부와 같은 친밀감으로 서로에게 의지했다. 서로 만나기 전까지 다른 사람에게서 애정을 충족시키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애착의 대상을 찾았다.”

저자는 헬렌 이전과 이후 복합 감각장애자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나갔는지를 조명함으로써 평범한 전기로부터 한 분야의 사회사로 책의 지평을 확장한다. 감각과 인식, 사유의 상호관계에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도 이 책은 생각의 넓이를 넓혀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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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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