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납부기한 긴 약점이용 고객돈 주물러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39분


1994년 세도(稅盜)사건의 진원지였던 인천에서 또다시 지방세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94년에는 구청직원, 법무사 등이 ‘비리 커넥션’을 이뤄 조직적으로 취득세와 등록세 등을 ‘착복’했지만, 이번에는 시중은행 창구직원들이 등록세를 마치 자기 돈처럼 쉽게 ‘유용’한 점이 큰 차이다.

지금까지는 인천지역 4개 금융기관 직원 4명이 횡령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수사가 확대되면 비리 은행원들은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횡령수법〓세금 횡령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 중부경찰서는 한빛 주택 조흥 외환 등 4개 시중은행의 수납담당 직원들이 각각 300만∼1억3000여만원의 등록세를 횡령한 사실을 밝혀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구속된 한빛은행 연수지점 여직원 박모씨(31). 입사 10년차인 박씨는 납세자들이 부동산을 산 뒤 60일 이내에 내야 하는 등록세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취득가액의 3%가 부과되는 등록세는 한 건당 수백만원에 이르는 ‘목돈’인데다 납부기한이 비교적 길어 유용하기 쉽기 때문.

인천지역 구청에서 누수된 등록세

구 청비리유형
유용액 순수 횡령액
중 구 1건 86만원 ·
남 구65건 1억5348만원 1건 162만원
연수구413건 4억7384만원 1건 612만원
남동구28건 4199만원 3건 250만원
부평구23건 4203만원 4건 256만원
서 구 6건 798만원 ·

박씨 등 비리 은행원들은 고객에게 세금을 받은 뒤 돈을 받았다는 수납필 소인만 찍어주고 전산입력은 하지 않은 채 은행보관용 및 구청통보용 영수증을 10∼20일간 ‘개인 보관’하는 수법을 썼다. 등록세는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에 구청에 ‘지연 입금’할 수 있는 시차를 이용해 고객 돈을 마음대로 유용한 것이다.

인천시가 최근 3년치 등록세 84만5000여건 중 80%에 대한 전산 대조작업을 벌인 결과 4개 시중은행에서 536건, 7억2000여만원이 유용됐고, 순수 횡령액도 9건, 1200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했다.<표 참조>

▽허술한 감시체계〓박씨의 비리사실이 드러나 자체 감사가 실시됐을 때 그의 개인통장에는 7600여만원의 잔고가 남아 있었다. 경찰은 그가 유용한 총액이 4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등록세를 구청에 입금하지 않은 돈은 7000여만원으로 유지됐다는 얘기.

그렇지만 은행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4월초 인천시에서 ‘통합재정정보시스템’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구청에서도 적발하지 못했다. 은행에서 등록세 마감일까지 받은 돈을 넘겨주기만 하면 중간에서 빠져나가도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은행의 한 관계자는 “창구직원이 작심하고 등록세를 빼돌릴 경우 구청 등 관련기관에서 확인을 요청해오지 않으면 이를 적발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공과금 수납체계의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구청 또한 납부자의 영수증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납부일과 입금일의 시차를 정확히 대조할 수 없다.

▽대책〓행정자치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이 같은 비리 여부를 확인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렸고 경찰청도 전국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인천시의 통합재정정보시스템이 이번 사건을 적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시스템은 각 구·군에서 별도로 관리하던 예산, 지방세, 세외 수입, 인허가 등의 자료를 통합 입력해 관리할 수 있는 전산망.

등록세의 경우 납부일자, 등기일자 등을 한 화면에서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날짜가 다르면 ‘횡령’ 또는 ‘유용’ 여부를 즉석에서 가려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까지는 각 구청은 은행에서 통보한 전산자료를 토대로 체납 여부만 확인해 독촉장을 보내는 선에서 세금을 관리해왔고 이는 전국적 현실이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 시스템이 전국으로 확대돼야 하고 등기소가 영수증뿐만 아니라 등록세 전산자료도 함께 구청에 넘겨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납인 위조 수사 나서▼

한편 은행 직원 세금횡령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 중부경찰서는 27일 은행창구에서 납세인에게 찍어주는 출납인(出納印)이 위조된 사실을 확인하고 위조 경위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인천 남구에서 납부 고지한 등기소용 등록세 영수증 중 가짜 ‘농협 안산출장소’ 직인이 찍힌 446만3000원짜리 영수증 등 800여만원 상당의 위조 등록세 영수증을 찾아내고 관련 납부자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 직원들이 등록세를 횡령 또는 유용한 것과 달리 납세자가 출납인을 위조한 뒤 부동산 등기를 마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천〓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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